자료설명
명치유신으로 근대화에 들어선 일본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임노동자층이 증가되었고, 자국내 곡물 시장의 안정을 위하여 조선에서 대량의 곡물을 ...
본문/내용
명치유신으로 근대화에 들어선 일본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임노동자층이 증가되었고, 자국내 곡물 시장의 안정을 위하여 조선에서 대량의 곡물을 유출하였다. 이것은 조선의 곡물 유통 구조에 심각한 충격을 가했다. 이미 조선내에서도 농민의 계층 분해가 어느 정도 되어 곡물을 구매하여 생계를 이어가는 계층이 많았다. 이런 상태하에서 곡물 유출은 곡물의 상품화를 진전시켜 기존의 곡물 수급 구조를 위협해 갔다. 나아가 대량의 곡물 유출은 국내 곡가의 등귀를 가져와 임노동자층의 생계에 압박을 가했다.
대일 곡물 유출은 양국간의 곡가 차이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실제로 조선의 곡가는 일본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일본은 조선에서 값싼 곡물을 가져가 그들 임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해 주었고 나아가 일본 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에 이용하였던 것이다.
곡물 유출에 따른 개항장 중심의 유통권 성립은 이전에 곡물 유통권과 경합하여 곡물의 상품화와 함께 곡가의 등귀를 가져왔다. 이것은 노동 생산물의 가격 체계와 생산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곡물은 본질적으로 계절적 변동이 심하여 성장 능력이 없는 농민의 잉여생산물은 곡가의 하락시에 지주, 상인조직, 봉건 지배 계급에 판매될 수밖에 없었다. 수출 미곡의 대부분이 지주의 소작이나 지방관이 수취한 세미가 대다수였다는 것은 농민적 잉여가 이전된 모습이다. 한편, 조세의 금납화의 진전도 농민이 스스로 곡물을 상품화하게 만들었다.
봉건 지배층은 방곡을 실시하여 그 전후에 발생하는 곡가차이를 이용하는 무곡 행위(곡가의 하락시 매입하였다가 매수후 곡가가 등귀하면 방매하는 것)를 자행함으로써 농민적 잉여의 실현을 저해하기도 하였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대일 곡물 유출은 곡물의 상품화를 진전시켰고 곡가의 등귀를 유발했으며 농민적 잉여 축적을 저해하였다. 그리하여 임노동자층과 소농민의 저항이 일어났고 그 저항은 반봉건 반제국주의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 강만길, [한국근대사]& 창작과 비평사 && 1989.
♠ 노태구 외, [동학혁명의 연구]& 백산서당 && 1982.
♠ 한국역사연구회, [1894년 농민전쟁 연구 I - 농민전쟁의 사 회경제적 고민]& 역사비평사 && 1991.
♠ 한우근, [동학군의 폐정개혁안 검토 ,역사학보]& 23호 &&1964.
♠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편,[갑오농민혁명의 쟁점]& 집문 당 && 1994.
♠ 이상식, 外[전남동학농민혁명사]& 전라남도 &&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