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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이후의 민권운동들은 흑인들의 지위향상을 초래하였지만, 그 결과 이들이 미국 주류사회에 통합되었다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 속에서 따로 고립화하는 하위문화를 형성하였다. 시민사회의 이같은 분절화 현상은 비단 흑인들에게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전후 이들과 함께 주변부 시민사회를 구성한 멕시코계와 아시아계 등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65년도 이후 이민한 집단들의 경우, 뉴욕의 그리스, 콜롬비아, 브라질인들, 로스 앤젤리스의 멕시코, 한국, 그 밖의 아시아인들이 시민사회의 주변부에 자신들만의 촌(town)을 형성하여 생활하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Dinnerstein et al., 1996: 339)
인디언들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의 양상을 보였다. 인디언들도 64년 흑인민권운동에 자극을 받아 ‘붉은 권력’(Red Power)을 내세우며 여러 차례 분리주의적 저항운동을 벌였다. 그 대표적인 사건의 하나는 1968년의 시민권법 제정에 항의하여 69년말 샌 프랜시스코의 알카트라즈(Alcatraz) 섬을 점거한 사건이었다. 각 부족을 대표한 인디언들은 그 섬이 19세기말 미국정부와의 조약에서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인디언의 땅’이라고 선포하고 2년동안을 점거하다가 71년 정부에 의해 해산되었다. 그후 인디언들은 72년도에 인디언업무국을 수일간 점령하면서 보호구역에 관한 제반 서류를 파기하였으며, 73년에는 사우스 다코타의 ‘부상당한 무릎’(Wounded Knee)을 점거하기도 하였다.(Dinnerstein et al., 1996: 331)
그 사이에 미국 정부는 인디언을 미국화하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서 이들이 보호구역을 떠나 도시에서 살게 하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69년에는 로스 앤잴리스, 시카고, 미내아폴리스 등 12개 도시에 인디언 재거주지역이 만들어졌고 …
그 사이에 미국 정부는 인디언을 미국화하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서 이들이 보호구역을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