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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1885년 파리에서 유학을 했는데, 그곳에서 샤르코(Charcot)의 히스테리 연구에 영향을 받아 히스테리 증상이 남성에게도 있으며, 암시에 의해 히스테리성 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그 당시 의학계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았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히스테리는 그 어원이 여성의 자궁을 의미하듯 여성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최면술로 마비나 경련을 일으킨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의사회를 탈퇴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14세나 위인 브로이어와 1893년 『히스테리 연구』라는 책을 냈다. 『히스테리 연구』가 세상에 나오자 비엔나는 물론이고 외국 학계로부터도 거센 반발이 제기되었다. 그러한 비난에 대해 프로이트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브로이어는 완전히 낙담해 버렸다. 그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들은 끝내 결별하고 말았다.
히스테리에는 환자의 감정 생활이 대단히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데, 히스테리 증상은 감동이 쌓여서 생기는 것이다. 히스테리 증상은 평상시에는 다르게 사용되어야 할 심적 에너지가 잘못된 통로로 흘러들어가 거기서 고여 버리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거기에 새 통로를 만들어 정상적인 통로로 인도하면 히스테리는 자연스럽게 치료된다.
다시 말해 히스테리 환자는 과거 때문에 앓는 것이며, 그러한 증상은 과거에 심리적 외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런데 이 증상은 환자를 최면 상태로 이끌어 다시 과거를 체험시키기만 하면 없어진다. 그래서 브로이어는 그러한 치료법을 `정화법(chatharsis)`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