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3·1 운동 직후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는 사회주의운동은 무엇보다도 민족해방운동의 한 과정으로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운동은 식민지 피억압민족의 해방과 동시에 계급적 해방을 열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의 물결은 중국과 일본 그리고 식민지 조선에서도 거센 파도처럼 밀려들어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민족해방운동의 한 이념적 무기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1919년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는 전민족적·혁명적 항일봉기였던 3·1운동이 일어난 이후,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던 사회주의 각 분파들의 형성과 활동에 먼저 주목하였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당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비합법적 조직체의 건설로 시작되었으며, 처음에는 여러 지역, 학맥, 친분 등의 관계를 통하여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 조직이 아무런 사상적 기초도 없이 그러한 친소관계로 지속되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각 사회주의 조직들은 강령 속에서 맑스주의적 당을 지향하는 성격을 분명히 밝혔고 조선에서 유일한 공산주의 정당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들은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위해 합법 또는 비합법의 다양한 운동단체들을 조직해가면서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연합하면서, 국내에서 전체 사회운동을 포괄하고 지도하는 전위정당을 조직하기 위한 투쟁을 벌여나갔다.
이러한 움직임은 바로 `사상단체`라는 합법적인 표면적 조직체로서 나타나기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내부에는 비밀공산주의 그룹들이 먼저 존재하면서 각각 합법적인 표면단체인 사상단체 등을 조직하고 지도하였던 것이다. 서울청년회, 북풍회, 조선노동당, 화요회 등은 제각기 그 이면에 비합법적 공산주의 그룹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후 합법적인 표면단체인 사상단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서울청년회 내부의 비합법적 조직은 고려공산동맹이 북풍회 내부에는 까엔당이 그리고 조선노동당 내부에는 스파르타쿠스당이 존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