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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민란의 발생과 전개
19세기는 봉건사회가 와해되고 이로 인한 모순이 첨예화되면서, 밑으로부터의 변혁세력과 운동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고양된 시기였다. 다양한 형태의 농민저항이 전국에 걸쳐 산발적으로 전개되었고, 19세기 전반기는 평안도 농민항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가장 많은 민란이 모의되거나 발생하였다. 즉, 영남과 호남지방에 집중되는 양상이었던 것이다. 그 뒤 군·현단위의 민란이 재현되고, 밑으로부터의 사회변동이 가속화되는 것은 1880년 이후였다. 개항 이후에도 거의 발생되지 않던 민란은 1992년 임오군란 이후 폭증하였다. 이시기에 민란이 폭증한 원인은 무엇보다도 1881년 척사운동, 82년 임오군란, 84년 갑신정변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적 사건과 관련이 있다. 위와 같은 일련의 정치적 사건은 국가체제에 균열을 가하고 사회갈등을 심화시킴으로써, 사회 저변에 깔려 있던 모순이 폭발되고, 저항세력의 수직적·수평적 의사소통과 집단행동을 유발시켜는 배경이 되었다. 1888~89에는 함경도와 강원도를 중심으로 15건이나 집중적으로 발생하였고, 1892년 이후부터는 걷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폭증하는 양상이었다. 발생지역도 1892년에는 함경도에 집중된 양상이지만, 점차 해서지방을 비롯한 산남지방으로 증가해 가는 추세이다. 특히 1893년 상황은 절정을 이룬다.
1892-93년 사이에 민란이 폭증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는데, 그 주된 요인은 다음과 같다. 조선왕조의 부세제도가 안고 있던 구조적 모순과 이를 바탕으로 한 국가권력과 지배층의 농민수탈이 극에 달해 있었고, 거듭된 자연재해와 결·호·잡세의 증가와, 기존 유통구조가 지주중심의 상품화폐경제로 급격히 재편성되어 곡가가 크게 상승하는 등 이들 요인들은 농민층 분해를 직간접적으로 도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