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과거에 일본학계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과 ‘남선경영론(南鮮經營論)’을 내세워, 원래 일본과 조선은 같은 민족이었고 한남부를 지배하였으므로, 1910년의 합병은 같은 민족을 다시 합치는 것이며, 과거의 지배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가 하면 광복 이후의 북한과 남한학계는 이에 대한 감정적 반발로서 ‘분국론(分國論)’과 ‘백제군사령부설(百濟軍司令部說)’을 주장하였다. ‘분국론’은 삼한·삼국의 주민들이 일본열도에 이주하여 독립된 분국을 세워 통치하였다는 주장으로 한민족의 ‘일본열도경영론(日本列島經營論)’과 같은 내용이며, ‘백제군사령부설’은 한남부의 가야지역을 통치한 것은 일본이 아니라 백제였는데, 이를 <일본서기>가 백제를 일본으로 바꾸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한일양국의 주장들이 전혀 상반된 결론을 제시하고는 있으나, 이들이 근거했던 자료 자체가 서로 달랐던 것은 아니었다. 동일한 자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입장이나 시각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서로 달랐던 입장이나 시각이란 각각의 견해들이 제시된 한일양국간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였다. 고대한일관계사의 문제가 근현대사의 연구와 같은 경향을 띄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요즈음 우리들은 일본 정치인들의 한일합병의 당위론이나, 전후처리에 대한 무책임한 발언, 그리고 독도 영유문제와 같은 역사적 의식이란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극우적인 발언이나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극일(克日)에서 시작된 일본에 대한 관심이 지일(知日)로 바뀌어 가고 있듯이, 이러한 일본의 막연하고 이기적인 선입관에 대하여 감정적인 반발로 일관할 수만은 없다. 일본이 유치해 질수록 우리는 더욱 어른다워져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일본의 국지적 전략에 이용당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