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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굴대로부터 바퀴를 발명한 것은 약 6,000년 전이다. 그것을 사람의 힘이나 짐승의 힘으로 굴린 시대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으며, 자체의 힘으로 달리는 수레는 항상 인간의 꿈이었다. 예를 들면, R.베이컨은 1250년 ꡒ어느 날엔가 말이나 그 밖의 동물에 의하지 않고 자체의 힘으로 달리는 차가 생기게 될 것이다ꡓ라고 예상했다. 15~16세기의 대예술가이며 비행기와 헬리콥터의 도면까지 그렸던 만능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스프링의 힘으로 달리는 3륜의 자주차(自走車)의 도면을 그렸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1569년 네덜란드인 S.스테핀이 돛에 바람을 받아 주행하는 풍력(風力) 자동차를 만들어, 28명을 태우고 시속 34km로 달렸는데, 현재와 같이 고도한 범주기술(帆走技術)이 없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는 달리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1680년에는 대과학자 I.뉴턴이 증기를 뒤쪽으로 분출시켜 그 반동으로 달리는 추력(推力)자주차를 계획하였으나, 실물을 제작하지는 못하였다. 본래의 의미의 자동차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에 증기기관이 실용화된 후이며, 특히 1770년 프랑스의 N.J.퀴뇨가 제작한 증기자동차는 역사상 처음으로 기계의 힘에 의해 주행한 차로서 유명하다. 당시 퀴뇨는 프랑스군의 공병 대위였으며, 포차(砲車)를 견인할 목적으로 대소 2대의 증기자동차를 시작(試作)하였다. 이 증기자동차는 앞바퀴 하나만을 구동하는 3륜차였으며, 중량이 크고 보일러의 용량이 작았기 때문에 그 속도가 겨우 사람이 걷는 정도인 시속 5km였다. 또 보일러도 15분마다 물을 보충해야 했으며, 앞바퀴 하중(荷重)이 너무 커서 조향(操向)하기가 어려웠고, 브레이크도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때문에 대형의 것은 파리 교외에서 시운전 중 언덕길에서 세우지 못하고 벽에 부딪쳐 화재를 일으켰다. 퀴뇨의 시도는 프랑스 혁명에 의해서 중지되었으나, 그 후에도 유럽 각지에서 증기자동차의 연구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