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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이 중세기로 평가되어야 할지 근대사로 편입되어야 할 지는 큰 논쟁거리이다. 이 변화의 경계선을 정확히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변화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가장 강력한 도구들은 새로 태동한 근대과학과 철학이었다.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태양 중심적 우주체계가 정교하게 발전되었고, 그것이 실제 승리를 거둔 것은 갈릴레오에 의해서이다. 뉴턴의 1687년의 [원리]가 가져온 영향은 심대했다. 사상가들에 있어서 물리적인 우주는 더 이상 자의적인 신적 행위의 장이 아니라, 설명이 가능한 하나의 법칙의 영역으로 나타났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과학적 발견들을 기독교를 평가절하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철학도 이에 못지 않게 이성의 이름으로 기존 권위에 열정적으로 도전하고 있었다. 1637년 [방법서설], 1641년 [제일원리], 1644년 [원리]를 저술했다. 증명될 때까지는 모든 개념들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주장과 재대로 증명되려면 수학적 증명의 확실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앞으로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었다. 스피노자는 합리주의를 강화시키는데 공헌하였고, 라이프니츠, 존 로크 등에 의해 종교의 합리성이 주장되게 되었다. 샤프츠베리 백작은 옳고 그름의 근거를 하나님의 의지가 아닌 인간 본성 자체의 근본 성격에서 찾았다.
과학과 철학의 이러한 발전은 18세기를 특징지었던 계몽운동의 기초를 마련했다. 계몽운동은 개인 생활과 사회 생활의 다양한 측면들에 이성의 법칙을 적용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이었다. 그것의 근본적인 원칙들-자율, 이성, 예정된 조화-은 근대 세계의 사고와 행동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 안에서 기독교가 움직이는 분위기를 지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