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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세력균형론은 지극히 단순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단순한 세력균형논리가 21세기 장기적인 한반도 안정과 평화의 비전으로서 합당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1945년 한반도의 미소에 의한 분할점령, 1948년 남북 단독정권들의 성립,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과 1953년 휴전선의 현상회복이라는 과정은 미소의 세력균형이 한반도에 투영된 결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한국전쟁이라는 군사적 충돌의 경험을 떠올린다면, 그리고 한반도의 안정을 38선이나 휴전선의 현상을 유지하는 것으로 본다면, 한반도의 안정은 세력균형의 결과라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특히 냉전시대에 북한이 소련과 중국에 의존하고 있던 동맹의 정치에 비추어, 남한이 미국과 맺어온 군사동맹의 정치는 세력균형의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해서 무리가 없을 것이다. 1994년 5-6월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싸고 증폭된 군사적 위기 속에서 미국이 결국 군사행동을 포기하고 북한과 포괄적인 정치외교적 타결을 선택한 것도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라는 동북아 세력균형의 결과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에서는 남쪽에 대해서도 북쪽에 대해서도 세력균형의 정치가 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냉전시대와 달리 소연방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정치적 자유주의화로 나아가고 중국이 체제변화를 겪는 등 북한과 이들 나라들간의 군사관계의 성격이 크게 변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변화된 탈냉전의 상황에서 한국의 대외관계가 냉전시대에 불가피한 것으로 보였던 미국과의 종속적 동맹체제에 의하여 지배되는 상황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필수적인 유일한 선택이어야 할 것인가. 또 통일이후 한반도가 그와 같은 체제에 머무를 경우 동북아 평화에 유익한 한반도의 장기적인 외교적 비전으로서 성립할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진지한 비판적 검토는 결코 때이른 것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