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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전반기에 청년운동의 전개과정에서 각파 공산주의 그룹이 수행한 활동상에 대해서는 박철하, 안건호의 연구성과가 있다. 그에 따르면 1920년대 전반기에 서울파 공산주의 그룹은 서울청년회와 연관을 맺고 있었으며, 북풍파 공산주의 그룹은 경성청년회와, 화요파 공산주의 그룹은 신흥청년동맹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비밀 공산주의 그룹들이 합법적 `표면기관`을 매개로 해서 공개 영역의 청년단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조선공산당 창립 이전에 존재하던 여러 공산주의 그룹들은 다투어 당 창립을 최우선의 조직적 과제로 설정했다. 왜냐하면 조선공산당은 코민테른의 지부로 인정된 유일한 기관이었으며, 한국의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그에 복종할 의무를 갖는 기관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1924년에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을 통일하고 그에 기초하여 단일한 공산당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대두됐다. 국내외 각 공산주의 그룹은 공산당 결성을 위해 협의를 거듭했다. 그 결과 화요파, 북성회파, 화요파 공산주의자 그룹은 공산당 결성에 합의하여 1925년 4월 17일 서울에서 비밀리에 조선공산당 제1차 대회를 개최하고 조선공산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당시 존재하던 모든 공산주의자 그룹이 이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노동당 그룹의 일부, 서울파 공산주의 그룹은 당외 공산주의 단체로 머물렀다. 왜 이들이 당 참여에 불참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해명되어 있지 않다.
종래 조선공산당의 역사는 제1차∼제4차 공산당으로 구분 지어 설명됐다. 즉 제1차 공산당은 1925년 4월 창건됐으나 그 해 11월 신의주사건으로 궤멸됐고, 다시 강달영 등에 의하여 당이 재건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