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903년 2대 심홍택군수가 취임할 무렵 울릉도에는 일본인이 63호나 살고 있었고,일본정부는 이들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도동에 주재소까지 설치하는 침략성을 보였다. 1904년 8월에 일본정부는 대한제국 정부를 강요해 한일협정서를 성립시켰으며, 이 협정서에 의해 정부의 주요 부서에 일본인 재정고문관과 외국인 외교고문관을 두어 식민지 정벌의 절차를 밟아 나갔다. 이 무렵 러일전쟁중인 일본해군은 러시아 해군을 정찰할 목적으로 1904년 8월에 울릉도에 망루를 설치했으며 1905년에는 독도에도 망루를 쌓았다.
1905년에 일본은 독도를 그들의 영토로 `편입`시키는 조치를 취하기에 이른다. 일본시마네현의 나카이 요사부로라는 어업사업가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도에서 강치등 어로의 독점권을 얻기위해 일본정부에 교섭을 해줄것을 농상공부에 요청했는데, 이 소식을 접한 일본해군성은 그로 하여금 `대한제국 정부에 빌려달라고 요청할 것이 아니라 일본정부에 독도를 편입하고 빌려줄것을 요청`하게 하였다.
이에 나카이는 `량고 도(독도)를 일본 영토에 편입하고 자신에게 빌려줄것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일본정부에 제출하였으며, 이에 일본정부는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서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북위 37도9분30초, 동경1백31도55분, 오키도와의 거리가 서북쪽으로 85리에 달하는 지점의 섬을 죽도(다케시마)라 부르고, 지금부터 본현 소속의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한다.` - 메이지 38년 2월 22일. 시마네현 지사 송영무길-
그뒤 1년후인 1906년 3월 28일에 시마네현의 사무관을 통해 일본은 서면이 아닌 구두로 울릉군 군수 심흥택에게 알렸다. 이때 대한제국은 일본인 통감이 통치하는 상황이었다. 이 사실을 심흥택군수로 부터 보고 받은 대한제국 정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