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신숙주가 뛰어난 학자였고, 남긴 업적도 많다는 사실은 앞에서 말한 책들을 통해 대강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신숙주의 모습은 자리를 한결같이 지키고 앉아서 밤새 불 밝히고 학문에 전념하는 학자의 모습이었을 뿐, 그가 몸으로 뛴 부지런한 신하였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던 부분이다.
그가 유능하고 열심인 학자였다는 사실은 실록의 곳곳에도 드러나고 있다. 그에 대한 기록은 세종 20년 2월 진사시에 신숙주 등 100인이 급제했다는 기사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그는 늘 독서를 열심히 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동료에게 대신 숙직하기를 청하여 밤새 잠을 자지 않고 글을 읽는 신숙주를 가상하게 여긴 세종이 어의(御衣)를 하사했다(신숙주 졸기)는 기록은 신하를 아끼는 성군으로서의 세종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동시에, 너무나 책을 좋아했던 신숙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가 세종 25년 통신사 서장관으로 일본에 간 것(실록, 성종6년 6월 21일)을 비롯, 수양대군의 서장관으로서 중국에 갔다 오고(단종 즉위년 9월), 세조 즉위 후 주문사로 다시 중국에 갔던 것과, 훈민정음으로 운서를 번역하기 위해 성삼문과 함께 요동을 수차례 다녀온 사실들(세종 27년 1월7일)을 살펴보면, 임금의 신임을 받아 중책을 수행하게 된 까닭도 있지만 역관도 무관도 아닌 문관으로서 고된 사행을 그렇게 여러 차례 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부지런하며, 체력도 좋은 사람이었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단순히 외교 문서만 담당한 것이 아니라 직접 사행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