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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르네쌍스 휴머니스트들은 거의 예외 없이 기독교인이었으므로 르네쌍스 휴머니즘을 기독교와 관련해서 보려는 노력은 정당화된다. 하지만 조화라는 논리로 기독교와 휴머니즘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태도는 여전히 휴머니즘에 대한 현대적 인식에 머무른 것으로 앞서의 정치비평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르네쌍스 휴머니스트들은 단순히 그리스나 라틴 학자들이었고 휴머니즘은 기본적으로 교육과 문학 담론이었다. 다분히 문학적이고 교육적 운동이었던 휴머니즘이 지고의 인간적 가치추구와 동일시되는 ꡒ이즘ꡓ이 된 것은 최근의 변화이다. 따라서 르네쌍스에서 휴머니즘의 정치성향은 인정되지만 세습적이고 종교적인 기반을 지닌 기존질서에 도전할 만큼 큰 대세로 성장했다고 보긴 어렵다.
르네쌍스는 사회와 삶의 가치들이 신 중심으로 되어 있었고 국가뿐만 아니라 교회에 의해서 통치되었던 시기였다. 종교는 단지 개인의 신앙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의미관계, 사고방식, 문화생활 등을 생산, 재생산하는 동력원이었다. 프레드릭 제임슨 (Fredric Jameson)에 의하면,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그러하듯 16세기의 종교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했다. 종교는 ꡒ문화적 지배인자로서 그 안에서 문제들이 생성되고 토론되는 마스터 코드였다. 그렇다면 그것은 ...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이데올로기 형태이다.ꡓ 당시의 문화적 대세를 결정지은 이데올로기적 충돌이 있었다면 그것은 신학에 관련된 문제였을 것이다. 실제로 조직적이고 포괄적인 문화적 징후는 휴머니즘에서보다 프로티스탄티즘에서 더 잘 발견된다. 르네쌍스는 캐톨릭시즘과 프로티스탄티즘 간의 세계적 규모의 헤게모니쟁탈전을 목격했다. 르네쌍스 시대의 종교적 입지는 수정주의자들의 내란 원인에 관한 최근 연구보고에 의해서도 다시 입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