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사락눈만을 경험한 사람 즉 본 사람은 사락눈에 대한 미리 들어가 있는 견해 밖에 못 가진다. 그러한 한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함박눈을 경험한 사람의 경우도, 함박눈에 대한 미리 들어가 있는 견해만 가지게 되며, 에스키모 사람들은 수십가지 종류의 눈에 대한, 미리 들어가 있는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는 전혀 다른 눈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조성 음악과 비조성 음악이 있고, 국악과 양악이 있는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의미를 발생시키는 일에 기여하는 기존 재료의 속성이 미리 들어가 있는 견해화 되지 않으면, 비조성 음악의 이해도 불가능하고, 국악도 국악의 맥락에서 이해함은 불가능해진다. 모든 것이 <미리 들어가 있는 견해>의 유무와 그 역할 때문이다.
갓 태어난 인간에겐 미리 들어가 있는 견해가 없지만, 태어난 직후부터, 눈과 귀 등 감각이 작동됨으로서, 미리 들어가 있는 견해를 가지는 일을 한다. 성인은 그 과정을 모르고 있지만, 아이들은 그 일을 태어나자마자 시작한다. 어떤 경험 대상이 그 아이 앞에 존재하느냐가 바로 그 아이의 인생을 결정하게 된다. 즉 그 아이에게 미리 들어가 있는 견해의 수와 질을 결정하게 된다.
그 만큼 어떤 대상이 어떤 방식으로 아이 앞에 존재하는가가 중요하고, 아이들 모두에게 그것들이 같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서로 다른, 미리 들어가 있는 견해 때문에, 아이들은 서로 다른 인간이 되는 것이다. 무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성년이 된 학생들도 자기의 선생이 어떠한 <미리 들어가는 견해>를 제공하느냐에 의해서 그 성년 학생의 <보는 눈>(선입견)이 결정되며, 그 <보는 눈>의 성격이 그의 인생을 결정한다. 누가 만일 미리 들어가 있는 견해를 통제할 수 있다면, 교육의 완벽한 통제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