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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회의 성립과 발전
고려 말기에는 농민의 경제생활, 촌락의 내부구성, 계층구조의 변동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회변동이 일어났다. 조선건국은 이러한 사회변동을 바탕으로 하여 신흥사대부계층과 신흥무장세력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결집됨으로써 이루어 졌다.
조선을 세운 주도세력은 자신들의 계급적 입장, 성리학적 정치이념, 정치세력 내부의 힘 관계에 따라서 조선국가의 여러 제도를 수립하고 이를 [경국대전]의 반포를 통해 일단락 지었다.
중앙의 정치기구는 국왕을 정점으로 하여 과거를 통해 관직에 오른 양반들이 중요한 권력을 독점하도록 짜여졌다. 반면에 국가재정에 필요한 재원은 대부분 농민층의 부세 부담으로 채워졌다. 전국의 모든 군현에 수령이 임명되어 중앙정부는 인민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통일적인 지배력을 한층 강화시켰다.
성리학은 왕을 비롯한 지배층의 정치윤리, 정책내용, 행동규범에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쳤다. 차츰 성리학의 영향력은 일반민의 일상 생활규범에까지 확대되었다. 세종대에는 한글이 창제되어 우리 문화의 기반이 확대되고, 농서, 의학서, 과학기술서 등이 편찬되어 고려 말 조선 초기의 사회변화가 문화발전으로 피어났다.
제7장
조선 전기 사회변화와 외세침략
15세기 후반부터 과전법체제가 차츰 무너져서 마침내 관인 층에 대한 수조지 분급제도는 혁파되었다. 지배층은 경제적으로 토지소유에 기반 한 농업경영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어 토지를 한층 늘려나갔다. 훈척세력은 권력을 이용하여 많은 토지를 집적하였고 이에 대해 사림파들은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조세제도에서는 공물, 군역의 모순이 크게 나타났다. 공물은 이미 농민들이 직접 부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방납이 크게 확산되었으며, 이는 공물 값을 부담하는 농민들에 대한 중간수탈을 불러일으켰다. 군역을 비롯한 신역은 직접 역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대립이 성행하고 관리들은 이를 농민수탈의 기회로 활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