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시대적 배경
신라와 당나라와의 관계는 밀접했다. 건국한지 아직 얼마 되지 안은 당나라는 신라를 친당 세력으로 하려 하고, 신라는 당나라 문화를 수입하는 데 앞장서고자 했으므로 이해가 일치했다.
통일전쟁 기간 동안에는 당나라와의 관계가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당군을 끌어들여 통일을 하고서는 당군을 몰아내야만 했다. 그때의 외교관계를 말해 주는 국서는 여러 모로 흥미로운 자료이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 두 나라는 다시 평화로운 관계를 회복했으며, 대외교의 관계가 오히려 더욱 중요시되었다. 신라는 문무왕, 신문왕대를 거쳐 그 다음 임금인 성덕왕 때에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는데 성덕왕은 당나라에 보내는 국서 작성에 각별히 유의했다. 언제부터인지 상문사(祥文司)라는 기관을 두어 외교문서를 관장하게 했었는데, 성덕왕은 상문사를 개편해 통문박사(通文博士)를 두었고, 그 다음 경덕왕은 통문박사를 한림(翰林)이라 했다. 이 기관에 능통하고 ,문필이 넉넉한 인재를 두어 외교 문서를 맡게 했다.
삼국이 통일되었어도 화쟁의 논리로 상하를 아우르려는 원효(元曉)의 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삼국을 통일했기 때문에 더욱 이루어질 수 없었다. 전국을 지배한 서라벌의 귀족은 불교의 정신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사치스럽고 화려한 생활을 누리며 태평성대의 꿈에 도취되어 있었다. 이 꿈이 깊어지는 것에 비례해 일반 백성들의 고난은 가중되었다. 서라벌의 귀족은 이러한 영화를 함께 나누는 집단이지만 귀족 중에도 진골 육두품· 오두품· 사두품 등의 골품제에 의한 구분이 있었으며, 육두품 이하는 사회적 진출에 제한이 있었고, 설사 뛰어난 재능이나 나라를 구할 만한 경륜을 지녔다해도 진골 지배체제를 밑에서 뒷받침해 주는 구실을 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불만과 함께 비판의식이 싹텄다.
참고문헌
1)조동일,『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1990.
2)조동일,『한국문학사상사시론』,지식산업사,1999.
3)http://myhome.shinbiro.com.
4)http://provin.kyonggi.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