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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는 독일 고전철학의 대표자 중 한사람인 칸트의 철학을 프랑스 혁명의 독일
적 이론으로 성격지웠다. 맑스의 이러한 지적은 칸트 외의 다른 고전철학의 대표자
들의 초기 활동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독일적 이론은 프랑
스 계몽주의자의 견해와는 다르다. 독일 철학자들은 자신의 견해 속에 프랑스 혁명
의 진행과정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1789-1799년의 혁명이 달성하였던 실천적 정치
적 결과 및 법률적 결과가 독일에서는 본질적으로 달성될 수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 부르주아 혁명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독일 부르조아지의 실재적인
경제적 정치적 미약함을 반영한다.
독일 부르주아지의 견해는 프랑스의 계몽주의자와 유물론자들의 견해와 본질적
으로 달랐다. 18세기말-19세기초의 독일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낡은 체제와 새
로운 체제의 타협, 낡은 질서의 점차적 변화, 개조의 방식에 의한 갱신 등을 자신
의 이상으로 간주하였다. 독일 계몽주의와 관념론 철학자들은 근본적인 사회 경제
적 변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실현하는 혁명적 방식에는 반대하였다.
셀링, 피히테, 헤겔의 활동이 만년으로 접어들 무렵, 즉 그들이 프랑스 혁명의 이
상을 적대시하게 되는 시기의 이들 독일 이데올로그들의 반동적인 사회 정치적 견
해 속에는 겁 많은 독일 부르조아지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그들이 지주적 융커적 반
동의 이해관계와 분위기에 굴복했다는 점이 나타나 있다.
프랑스 유물론자와는 달리 권력을 쟁취할 힘이 없는 18세기말-19세기초의 미약한 독일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관념론자였고, 생활의 실천에서 분리되었으며 현실 변혁의 혁명적인 길을 부정한 극도로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철학체계의 창조자였ㄷ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