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 소설을 읽으며 험버트가 롤리타를 부르짖을 때마다 나도 덩달아 애틋하게 되뇌일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험버트는 그만큼 측은하고 독자로 하여금 기꺼이 변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무척이나 친근한 주인공인 것이다. 친근? 흠, 험버트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정말이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또 별 수 없는 사실이다.
다 읽고 나서 이 소설을 부도덕하다고 비난했던 당시를 이해 하기가 힘들었다. 이 소설은 도덕/부도덕과는 거의 무관한 듯이 보인다. 오히려 이 소설은 가엾은 자기모멸과 헛된 집착에 대한 자기고발이라고 불러줘야 맘이 편할 듯 싶다.
소설 내내 자신의 잘못을 낱낱이 드러내어 자아비판하는 당사자는 다름아닌 험버트이다. 가끔은 아주 신이 나서, 또 가끔은 아주 풀이 죽은 채로, 재판을 기다리며 그는 이야기한다. 험버트는 서두에서부터 자신의 이름이 `험버트 험버트`로 성과 이름이 같은 까닭을 `내 비열함을 가장 잘 드러내주기 때문에`라고 밝히며 자신에 대한 공격의 포문을 연다.
이후에 이어지는 자신에 대한 조롱과 경멸, 자기비하는 어린 소녀를 향한 그의 욕망을 비난하고자 하는 독자를 머쓱하게 만들만큼 통렬하고, 곳곳에 반짝이는 위트와 유머는 어느새 험버트를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이 소설에 대한 잘 알려진 비평인 `끔찍스럽거나 비극적이기에는 우스꽝스럽고, 재미있기에는 기분이 안좋다`는 윌슨의 말은 실로 적절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 첫사랑이었던 애너벨과의 비련 이후로 험버트는 10대 초반의 어린 소녀들(그는 이들을 `님펫(요정)`이라고 명명한다)에게 병적인 집착을 하게 된다. 포우의 <애너벨 리>를 의식한 것이 분명한 애너벨과의 비련도 슬프지만,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데, 해변에서 실패로 끝난 첫 시도에 관한 묘사를 일례로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해변은 사랑을 나누기에는 너무나 돌투성이였고, 그후 얼마 안있어 그녀는 병으로 죽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