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궁중무용의 발생 시기는 왕권정치의 본격적인 틀이 잡힌 삼국시대부터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민중들에 의해 주술적인 의미로 추어지던 무용이 관람하는 무용으로 발전하였고, 궁중으로 유입됨으로써 격식을 갖추고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춤으로 발전되었다. 삼국시대의 궁중무용은 고대 중국의 `구부기(九部伎)` 중 `고구려무`에 대한 언급이나 현존되는 일본 궁중무용 `부가쿠(舞樂)`의 `우마이(右舞)`를 발해악, 신라악 등으로 불렀다는 기록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하여 송나라의 궁중무용이 유입됨으로써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지고 추어지던 궁중춤을 지칭하는 향악(鄕樂)과 중국에서 들어온 궁중춤을 지칭하는 당악(唐樂)으로 나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궁중무용은 더욱 발전하는 계기를 맞게 되는데 조선 전기에는 개국창업(開國創業)을 칭송하고 왕실의 권위와 위상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창제되었으며 조선 후기 특히 순조 때에 들어서는 효명왕세자와 가야금과 궁중정재에 탁월한 실력을 지닌 김창하에 의하여 24개나 창작됨으로써 궁중무용의 황금기를 보내게 되었다. 이처럼 궁중정재는 조선시대 왕궁문화의 뿌리이자 꽃으로 자리했다. 그 이후 정재는 일제 강점기와 전란으로 궁중무용의 예인들이 사라지면서 단절되는 위기도 있었으나 화려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그 맥이 꿋꿋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여기에는 조선시대 마지막 궁중무용 음악양성소였던 이왕직 아악부의 아악사장 김영제 선생과 함화진 선생이 남겨 놓은 많은 기록과 이 시대의 마지막 무동인 김천흥 선생, 그의 제자 이흥구 선생의 옛 문헌 연구와 예술적 감각에 의한 복원 작업이 지대하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1. 김말복, 무용의 이해, 예전사, 서울, 1999
2. 정은혜, 정재연구Ⅰ, 대광문화사, 서울, 1993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서울,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