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Ⅰ. 머리말
서구에서 발생한 사회진화론이 시기와 공간을 달리하면서 어떤 변형과 적용을 통하여 각국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분석에는 더 많은 연구가 요청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수용된 사회진화론에 대한 연구에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1910년 이전으로 연구대상 시기를 한정하고 있다. 박찬승만이 1920년대의 실력양성운동을 다루면서 민족개조론이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민족개조론과 사회진화론의 관련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지는 않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필자는 기본적으로 사회진화론의 영향이 1910년 식민지화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수용된 다양한 세계사조들이 접합되면서 사회진화론의 형태는 좀더 다양화 한다. 필자는 이러한 모습을 식민지하의 국내상황과 맞물리면서 전개된 사회진화론의 변형으로 이해한다. 적용과정에서 변형되었다고 해서 사회진화론의 범주에서 제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목적은 한국사회에 수용된 사회진화론이 적용과정에서 어떻게 변형되면서 적용되는가를 통하여 사회진화론의 구체적인 내용과 성격을 파악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서 당시 지식인들이 사회진화의 주체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으며 사회진화를 위한 방법을 어떤 형태로 제시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대한제국기의 경향과 비교하는 방법을 통하여 주체문제와 방법론의 방향이나 성격을 보다 분명히 하기로 하겠다.
본고의 연구대상은 식민지시대의 여러 부류 중에서 민족주의계열에 속하는 지식인들이다. 이 글이 물론 사회진화론에 관한 연구이기는 하지만 넓게 보면, 식민지시대를 살았던 민족주의계열 지식인들의 사회사상과 사회진화론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하는 작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특히 필자는 한국사회에서 사회진화론의 변형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되는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에 주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