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머리말
식민지 시기 한인들이 아나키즘을 수용하고, 이를 기초로 아나키즘운동을 전개한 지역 중 하나는 일본이었다. 일본에 건너간 많은 고학생과 노동자들은 191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사회주의사상을 받아들였고, 이러한 신사상을 가진 한인들이 1921년 11월 黑濤會를 결성하였다. 흑도회는 재일 한인들에 의해 조직된 사상단체의 효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흑도회는 내부의 사상대립을 벌이고 결성 1년 만에 분화하고 말았다. 중앙집권적 볼셰비즘을 지향한 세력은 北星會로, 자유연합적 아나키즘을 지향한 세력은 黑友會를 각각 결성한 것이다. 이로써 두 단체는 1920년대 본격적인 사상운동의 시대를 개척하였다.
최근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의 고조와 함께 일본지역에서 활동한 한인아나키스트들에 대한 연구도 큰 진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연구성과들은 東京의 한인아나키스트들이 흑도회-흑우회-흑우연맹으로 이어졌으며, 사상활동뿐 아니라 노동운동에도 널리 진출하였음을 밝혀주었다. 하지만 흑도회 이후 순수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처음 조직된 흑우회에 대한 연구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흑우회는 비밀결사와 테러활동에 주력하다가 일제의 탄압에 의해 궤멸상태에 처하였다. 이 단체는 `不逞社 사건` 이후 점차 공산주의세력에 밀려 침체되었으며, 더욱이 신간회와도 대립한 탓에 종래 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하였다.
이 글은 기존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1920년대 재일한인 아나키즘운동을 주도한 東京 흑우회의 활동과 이념에 대해 고찰하려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흑우회의 결성배경과 활동상황, 그리고 다른 세력들과의 관계 등을 살펴볼 것이다. 또 이들의 독특한 행적을 이해하기 위해 흑우회의 이념적 특징을 밝히려 한다. 현존 자료가 극히 제한된 만큼, 당시 이들에 의해 발간된 기관지와 검찰조서, 그리고 신문자료 등을 1차 사료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