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경제민주화의 개념규정을 둘러 싼 혼란
개발독재시대에 공고화된 ‘한국형 자본주의체제’는 지금에 와서 그 누구의 눈에도 한국이 선진 사회로 나아가는데 있어 부적합한 것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자유주의자의 입장에서건 진보적 입장에서건 경제적 활력과 공정성의 면에서 더 이상 정당화되기 힘들게 되었다. 저차적인 경제체제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무수한 모순과 갈등,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개발독재체제는 이미 해체되어가고 있지만 아직 어떤 뚜렷한 방향으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도기적 표류를 지속하고 있다. 그 근본 원인은 무엇보다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체제를 혁신하고자 하는 정치세력과 리더십이 전혀 형성되고 있지 않은데 있다. 이런 가운데 문제의 근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개혁의 방향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가려는 재벌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있다. 그들은 경제민주화를 규제완화, 개방화, 세계화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재벌자신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위험한 일은 이 신자유주의적 사조가 관변연구기관 뿐아니라 일반 학자들, 시민단체에서 까지 암묵적으로 추인되고 있는 점이다.
개발독재는 당연히 시장의 심화, 시장의 조정기능을 매우 억제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시장기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전세계적 추세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시장과 더불어 존재하고 - 특히 한국에서는 시장이 억제됨으로 해서 비대화된 - 조직(국가, 기업, 기타 모든 사회적 조직)에 존재하는 의사결정과정의 비민주성, 비합리성, 불공정성이 시장의 경쟁압력에 의해 제거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시장은 체제개혁의 ‘수단’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부정적이라면 경제 민주화는, 몇 가지 측면에서 시장의 강화를 내포하지만 결코 경제민주화의 핵심내용이 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