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2. 고대의 정치적 발전
⑴ 중앙 집권화의 진전
고구려의 발전
⑴ 국가 체제 정비: 고국천왕(179-197)
- 왕위의 부자상속제, 5부족을 5부의 행정구역으로 개편
⑵ 대외 항쟁 미천왕-낙랑 정복(313), 서안평 점령
고국원왕- 선비족(전연) 침입, 백제 침공→전사 ⑶ 소수림왕(371-384)→
전진과 외교 관계 수립- 불교 수입
태학 설립, 율령 반포
⑷ 전성기(5C)
① 광개토왕- 요동을 포함한 만주의 대부분 지역을 정복
백제 압박, 신라 원조→ 왜군 격퇴
광개토대왕의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國岡上 廣開土境 平安 好太王)`입니다.(교,p55)→의미는:
이 시호가 경주
에서 나온 그릇에 있습니다.(교,p47)→의미는:
② 장수왕- 평양 천도(427)→ 왕권 강화, 남진 정책
보충1> 고구려- 소수림왕(371-84)
⑴ 고구려가 국가 체제 정비에 성공한 까닭
① 370년대 유리한 국제 정세
고구려에 압력을 가하던 전연은 370년에 전진에 의해 멸망하였는데, 이 때 고구려는 국내로 망명해 온 전연의 태부 모용평을 잡아 전진왕에게 압송함으로써 호의를 표시하였다. 그러자 새로이 북중국의 패자가 된 전진은 호의의 표시로 고구려에 불교를 전해 주는 등 양국간의 간계는 긴밀해졌다.
한편 전연과 마찬가지로 고구려에 대하여 공세를 취해오던 백제도 375년 근초고왕이 죽은 뒤로는 상대적으로 약화의 징후를 나타내었다. 이처럼 외부의 압력에서 해방되자 고구려는 오로지 국가체제의 정비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② 필요한 인적 자원의 확보: 이 개혁사업은 다름 아닌 중국식 법제도와 정치제도를 도입함으로 해서 달성되었는데, 이에는 고구려에 망명해온 한인 관료의 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