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도시 구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주거구역은 가옥이었는데, 매우 폐쇄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부르주아들은 자신의 호화로운 가정생활을 드러내는 것을 별로 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가옥 구조는 필연적으로 중앙에 정원(혹은 마당)을 두고 ㅁ자 형태로 지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활의 중심이 되었던 이들 개인 가옥은 주거뿐이 아니라 정치적 모략과 지적 토론이 이루어지는 장이기도 했다. 이 책 맨 앞에 있는 화보에서 숙 엘 우에드라는 곳의 시가지를 공중에서 찍은 사진을 볼 수 있었는데, 설명을 보기 전에는 이것이 시가의 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을 정도로 중앙의 정원을 두고 격자무늬를 이루며 빽빽히 들어선 개인 가옥을 볼 수 있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 기후에 따라 가옥 구조가 달리 나타나며, 폐쇄적인 ㅁ자의 가옥 형태는 추운 북부 지방에만 나타나는 것에 비해 이슬람의 가옥이 거의 예외없이 ㅁ자형이고, 그 이유가 가정 생활의 폐쇄성,즉 가족 우선주의 때문이라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재미있는 것은 담에 대한 소유권과 골목의 사용권을 둘러싸고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인데, 이는 거리의 자유로운 통행을 요구하는 공공정책과 거리를 조금씩 좀먹는 사유건물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 때문이었다 한다. 과연 시가지의 사진에서도 거의 사람이 다니기 힘들다고 생각될 정도의 좁은 골목을 볼 수 있었고, 몇백 년 전의 이슬람에서도 지상권과 지역권을 놓고 분쟁이 일었다는 것이 오늘날과 별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시대와 지역에 상관없이 인간 생활은 비슷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도시 주거구역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도층은 그들만의 권력과 방범체계를 가지고 엄청나게 복잡한 내용의 율법을 발전시켜 왔던 것이다. 마치 우리 나라의 조선시대 향촌 사회에서 향반들이 지방의 권력을 잡고 중앙 정부와 또다른 세력을 형성하여 향약을 만들어 가며 향촌 사회를 통제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