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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6공화국
6공화국은 새로운 헌법을 놓고 입헌주의국가로 가느냐 아니면 종전의 군부독재국가로 회귀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치열한 투쟁이 벌어졌다. 군부독재에 길들여졌던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모든 분야는 보수와 혁신의 대립구도로 전선이 형성되었다. 6월항쟁의 기운이 남아있던 당시 시대상황은 6공과 5공의 단절을 정치적으로 요구하였다. 이것은 예컨대 특별검사제의 도입안으로 나타났다. 특별검사제를 두어 5공비리를 철저하게 수사하자는 안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국회가 검사를 임명하고 수사권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권력분립원리에 반한다는 이유로 여당이 반대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결국은 부정부패의 척결과 사회정의의 실현이라는 더 큰 헌법의 정신을 시행한다는 명분에 입각해서 1999년에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권력분립주의라는 헌법상의 큰 원리도 해석상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음을 보여준 좋은 예이다.
6공화국에서는 국가연합, 연방, 정치적 통합이라는 3단계 통일방안이 제시되었다. 90년 8월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이 제정되었고, 91년 9월에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다.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 양의 북한방문에 대한 처벌과 정주영 현대회장의 북한방문에 대한 불처벌이 대조되면서 국가보안법의 선별적 적용이 헌법적으로 문제되었다. 헌법에 따라 진정 민주적 평화통일을 이루고자 할 때 통일논의는 국민적 참여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졌다. 통일헌법이 보다 구체화되면서 대내적 민주화와 통일명제의 선후관계가 경합하였다. 한국헌법을 형해화시킨 남북분단과 그의 법적 표현으로서의 국가보안법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정상적인 헌법인식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그런 난해한 문제들이 곳곳에 잠복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헌법상황임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