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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이후 위축되었던 조선말의 회화는 조선의 마지막 시대를 장식한 뛰어난 화가 오원 장승업에 의해서 근대 한국의 남화계와 문인화의 흐름과 명맥을 잇게하여 안중식등을 거쳐 오늘의 한국동양화의 발판이 됐다.
오원 그의 생애가 걸객의 유랑생활이었음에도 그런 생활속에서 문인화의 계통을 밟아 절기기원에 화조화의 본질을 탐구했다.그는 스스로 타고난 천분에서 일찌기 동양화의 6법에 따르는 조형을 산수화를 통해서 추구하고 있었다.물론 오원은 이론보다 감성을 통하여 직접 실천했을 것이고 선천적인 체질을 통하여 무궁무진한 미의 세계를 느꼈을 것이다.
그는 독학 사색속에 대성한 화가다.일절의 기성수법이나 사본없이도 스스로 미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다.그는 비록 화원이라 할지라도 우리나라 대가의 작품이나 중국의 쟁쟁한 화가들의 모사본같은 것을 직접 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더우기 학문의 바탕이 없는 그가 전적이나화지를 눈여겨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기껏해야 사대부집 사랑방의 미닫이 그림이나 간혹 보았을 것이고 때로는 상인들이 들여온 중국의 이른바 풀이그림이라고 하는 모판화등을 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종류의 그림들이 오원의 웅대한 구도를 경영하는데 적지않는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그의 작품에서 전개되는 거침없는 진폭감,휘연한 필치,변화많고 웅대한 구성등은 중국청대의 혁신적인 화풍에서 영향을 받아 오원의 세계에로 융화시킨 독특한 예술이다.
오원이 이룩한 근대적인 새로운 남화와 문인화의 세계는 직접간접적으로 조석진과 안중식에게 계승되었으며 이들 두 명가를 이어 오늘의 한국동양화단에 남화계의 터전이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