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신명기 율법
위에서 언급한 지파동맹 때의 전승과 신명기의 관련성은 접근하는 시각에 따라서 차이를 가져온다. 열왕기가 묘사한 요시야의 종교 개혁을 보면 그것이 실제로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 책`의 결과라고 하며, 요시야 왕이 그 책의 규정들을 적용시킨 것으로 말한다(왕하22:1-23:3; 23:21을 참조). 그러나 역대기에 따르면, 종교 개혁이 요시야의 통치 12년(626)부터 시작되었으며(대하34-35장), 그 `율법책`은 요시야의 통치18(620)년에 발견된 것으로서 그의 종교 개혁의 2차적인 계기만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볼 때 정확하게 기록한 역대기의 기사가 신빙성을 더 해준다. 요시야가 앗수르의 통치권 밑에서 시달리던 예속 국가의 멍에를 떨쳐내 버리고 즉각 이방 종교를 거부하고 추방하는 싸움을 시작하였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태의 발전이다. 요시야의 이러한 반란은 앗수르 바나팔의 사망직전이나 직후(627/626)에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산당의 성소에서 섬기던 여호와 종교를 청산하고 모든 성직자와 성소를 예루살렘에만 집중시켜 놓은 일은 틀림없이 신명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신명기의 본질적인 내용은 621년에 성전에서 다시 발견된 `율법 책`이었다.
많은 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율법책의 발견을 경건한 속임수라고 판단하고,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신명기 책이 기록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학자들은 그 동안에 이러한 견해를 포기하였다. 그 율법 책은 그 당시에 기록된 내용보다 틀림었이 더 오래된 것으로 부족동맹 시대의, 전승과 관계 있을 것이고, 그 책에는 레위 지파의 전승들이 수집되어 있다는 것을 최근의 연구서들이 증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레위 지파의 전승들이 본래 북왕국에서 수집되었다가, 사마리아가 멸망한 다음에는 유대 나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율법 책의 모든 규정에 꼭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성소의 단일성에 대한 율법은 그것 자체대로 연구해야 할 문제이다.
참고문헌
박대선 외, [구약성서 개론],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1990.
장일선 , [구약전승의, 맥락], 서울 : 대한 기독교출판사, 1983.
, [하나님의 파토스], 서울 : 대한기독교출판사,1989.
, [신명기],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