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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잭과 J. 가스탕과 M. Unger와 G. Archer와 L. Wood와 S. 혼과 W. Shea와 본인으로 대변되는 전통 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의 일반적으로 인정된 연대기, 즉 후청동기(LB) 제1기=1570-1400와 후청동기 제2기=1400-1300과 동의한다. 따라서 이들은 가나안 정복을 LB 1와 LB 2사이에 두며 출애굽시의 바로를 투트모세 3세나 아멘호텝 2세와 동일시한다. 초기 연대의 주창자들은 성경에 언급된 불태워졌던 세개의 도시들, 즉 여리고, 아이, 하솔의 파괴된 지층들로 그들의 주의를 국한시킨다.
여리고 성에 대해서: 여리고에 대한 첫번째 중요한 발굴은 E. 젤린과 C. Watzinger의 지도로 1907년에서 1909년 사이에, 그리고 다시 한번 1911년에 오스트리아-독일인의 원정 여행에 의해서 행해졌다. Watzinger는 여리고가 LB동안에 점령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영국 고고학자인 가스탕은 이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고 1930년에서 36년에 자신의 원정 여행을 행했다. 그는 반대자들에도 불구하고 (1) 아케나텐 통치의 특징적이고 다양하고 잘 정립된 고고학적 기준의 특징들 중의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2) 아마르나 서선에서 여리고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3) MBA로부터 바로(right on) 아멘호텝 3세의 통치까지 이집트 왕들의 풍부하고 계속적인 왕쇠똥구리벌레(나 그 형상[역주: 부활과 영생의 상징으로 이집트에서 부적으로 사용되었다])가 남아 있긴 하지만, 아멘호텝 3세 이후에 왕쇠똥구리벌레가 거기서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리고가 아케나텐의 통치(1375년경)전에 여호수아에 의해서 함락되었다고 확신적으로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파괴를 침공하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돌리면서 LB와 파괴된 성벽과 동일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