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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식민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조선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잔학행위(일명 私刑)는 식민지 시대 전 시기를 통해 전국적으로 거의 매일 발생하는 사건이었다. 당시 식민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가운데에는 조선인을 동물이나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인식한 이들이 있었으므로 사소한 일에도 칼을 휘두르거나 이유없이 민간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자행했다. 즉 서너살 먹은 어린아이가 일본인 집앞에 늘어진 가지에서 떨어진 사과 몇알을 주워 먹었다 하여 일본인 집주인이 이마에 문신을 새긴다거나 7살난 소녀가 일본인이 경영하는 과수원에 가서 떨어진 과일 몇알을 집어 먹었다 하여 과수용 가위로 소녀의 허벅다리살을 베어내는 행위, 술김에 민간인의 집을 습격하여 일가족 4명을 칼로 난자하여 죽인 사건 등 그 잔학상은 조선인의 격분을 낳기에 충분했다.
또한 1927년에 식민지 조선에서는 숙명, 진명, 함흥고보, 보성, 함흥농교, 경신 등 전국 각지의 학교가 동맹휴학을 단행했다. 이들 학교가 동맹휴학을 단행한 이유는 일본인 교원의 민족적 모욕이 으뜸이다. 그 외 일본인 교원의 자격 불충분과 인격적 결함, 설비의 불안정 등도 포함된다. 이러한 동맹휴학에 대해 조선총독부는 출학과 무기정학조치를 내렸는데, 이에 대해 학생과 학부형이 반발하여 물리적인 대응을 함으로써 폭동화의 양상까지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