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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김기림의 이런 발언은 「오전의 시론」이라는 주지주의 시론이 발표된 이후 임화에 의하여 비판을 받게 되고, 이 비판에 대하여 약간 다른 각도에서 박용철이 전개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즉 임화가 기교주의의 발전에 대하여 김기림과는 다른 견해를 피력하게 되고, 이에 대한 다른 각도에서 임화의 견해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김기림의 기교주의 이해에 대한 비판이 박용철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이어서 김기림이 임화와 박용철의 비판 중에서 임화의 견해에 접근하는 글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박용철의 비판에 대하여 임화의 반론이 있었고, 이에 대하여 박용철의 재반론이 곧바로 나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기교주의의 발전에 대한 견해의 차이를 첨예하게 드러내게 되며, 그 본질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3. 기교주의의 본질에 대한 임화와 박용철의 이해
김기림의 기교주의에 대한 견해는 위에서 언급한 글에 나타난 그대로이다. 즉 그는 기교주의를 ‘순수시’가 지향하는 음악성의 추구와 ‘형태시(모더니즘)’가 지향하는 회화성의 추구로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임화는 약간의 이견을 제시하…
참고문헌
• 김기림, 「포에지와 모더니티 ― 현대시 평론」, 『신동아』, 1933.7.
• 김기림, 「시에 있어서의 기교주의의 반성과 발전」, 『조선일보』, 1935.2.10~14.
• 김기림, 「오전의 시론」, 『조선일보』, 1935.4.20~5.2, 6.4~14, 9.17~10.4.
• 김기림, 「시인으로서의 현실에 적극 관심」, 『조선일보』, 1936.1.1~5.
• 김기림, 「과학과 비평과 시」, 『조선일보』, 1937.2.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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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화, 「기교파와 조선시단」, 『중앙』, 19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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