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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년 隋의 수육(隋陸)대군은 염려를 무릅쓰고 동진해 왔다가 청천강전에서 을지문덕(乙支文德)에게 참패하고 청천강에서 신의주까지를 일주야 동안 무휴식(無休息)으로 패주하여야 했다.
隋가 실패한 뒤 이번에는 백제와 신라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으며, 고려·백제 二國을 상대로 하게 된 신라는 결국 위군과 손을 잡았다. 위는 642년 요동의 안시성 포위전의 실패를 겪은 뒤에는 전략을 바꾸어 수군을 보내 백제를 먼저 치고, 645년 내분으로 약화된 고구려를 남북에서 협공하여 마침내 평양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고구려가 쇠퇴기가 아니라 아직 나라로서의 힘을 가지고 있었고 고령사가 아니라 전쟁터에서 전사를 당했다는 것은 뒤에서 보듯이 고구려미술이 나라나 민족이 무력화할 때 생기는 타락양식을 거치지 않고 돌연 소멸해 버린 사실이 잘 말해 주고 있다 하겠다.
Ⅲ. 고구려 고분벽화
고구려의 무덤에는 크게 돌무덤과 봉토석실무덤 두가지가 있는데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즉 봉토석실무덤의 현실의 벽면에는 두텁게 회칠을 하고 있으며, 그 위에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것과 흑, 적, 청, 녹, 황, 백등 물감으로 벽면이 젖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