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식량증산을 꾀하려는 일제에 또다른 문제를 야기한 것은 반봉건적 소작관계의 존속에 따른 농가경영의 불안정이었다. 소작료는 1933년 이후 1941년까지 꾸준히 증가되었으며, 이같은 추세는 농업생상력의 증가추세를 훨씬 능가하였다. 또한 지주들은 이모에 대해서도 소작료 징수를 하기 시작했고, 소작료 량정시에는 표준근량 이상 또는 고봉으로 거두거나 소작료 납부기한을 지체할 때에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방법으로 소작료의 실질적인 인상을 꾀하였다. 그 결과 소작쟁의는 전시 총동원체제하의 탄압으로 그 규모와 회수에서는 줄어들고 있었지만 끊이지 않고 전개되었다. 이처럼 지주의 반봉건적인 착취와 이에 따른 소작쟁의의 빈발은 소작농민의 농업경영을 불안정하게 하였고 이들어 재생산조차 어렵게 하였다. 한편 지가의 앙등과 토지투기의 성행도 일제의 증산정책과 농촌의 안정을 저해하는 요인이었다. 또한 서북부 지방에서는 군수공업화의 진행에 따라 공장, 철도, 도로 등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토지투기가 더욱 심해지고 농경지의 전용면적도 더욱 늘어났다. 그 결과 경지의 절대 면적조차 1940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농…
토대로 경지가격을 전면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으며 토지일반의 거래 이용과 농업생산에 대해서도 간섭, 제한, 금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토지거래는 격감하고 매매가격은 하락하였다. 일제는 이같은 경지거래의 감소와 경지가력의 하락현상이 식량증산에 이바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즉 지주들이 전매차익을 노리는 투기를 줄이는 대신 토지 생산력의 향상에 전념하게 되고, 소작농민의 경우 소작권의 이동, 소작료의 인상 등 소작문제를 유발하는 요인의 감소로 생활이 안정되어 농업경영에 힘쓰게 되기를 기대하였던 것이다. 결국 저물가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던 이들 법령의 토지정책상 의도는, 한편으로는 경지가격을 억제하여 생산에 종사하려는 지주와 농민의 토지투자 수익률을 보장해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지 거래와 이용에 대한 직접적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전시 식량증산의 효과를 기대한 것이었다.
참고문헌
• 조동걸, 『일제하 한국농민운동사』, 한길사, 1979
• 김운태, 『일본제국주의의 한국통치』, 박영사, 1986
• 박경식,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지배』, 청아, 1986
• 정연태, 「1940년대 전반 일제의 토지정책」, 『서암조항래교수화갑기념한국사학논총』, 1992
• 「1940년대 전반 일제의 한국농업 재편책」, 『국사관논총』38, 1992
• 「일제의 한국농지정책(1905~1945)」,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1994
• 「1930년대 일제의 식민농정에 대한 재검토」, 『역사비평』, 1995 봄
• 최유리, 「일제말기 ‘조선증미계획’에 대한 연구」, 이대 석사학위논문, 1986
• 전강수, 「전시체제하 조선에 있어서의 미곡정책에 관한 연구」, 『경제사학』, 1990
• 이송순, 「일제말기 전시체제하(1937~1945) 조선에서의 미곡공출과 농촌경제의 변화」, 고려대 석사학위논문,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