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동천}의 고도한 상징성을 이해함에 있어서 이 작품은 매우 효과적인 단서가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눈썹 역시 한편으로는 초승달을, 다른한편으로는 관능적 욕망의 대상을 암시한다. 따라서 나레니터와 그 눈썹과의 눈맞춤은 현세적 관능적인 교류를 암시하는 것이지만, 그 눈썹은 또 추석 보름달(만월)에 다다르기 위한 초승달을 암시하기도 한다. 나레이터와 눈썹 사이의 눈맞춤의 관계는 2연, 3연에 이르면 <가슴에 끄리는> 눈썹으로, <열두 자루 비수 밑에 숨기어 살던 눈썹>으로 그 양상이 달라진다. 말하지면 나레이터에 있어서의 뜨거운 관능(피)의 고뇌는 세월을 거듭할수록 차츰 그 현세적 육체적 실재로서의 의미를 상실해 가는 것이며 차츰 가슴에 맺히는 어혈로 즉 한의 가락으로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며, 마침내 열 두자루 비수가 다 녹슬듯이 그러한 한조차도 떨쳐 버린 자리에 문득 현실의 일상성들이 역력히 부각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가슴에 사무치던 온갖 설움과 분노들이 저절로 녹아내리듯 녹아내린 순간 너그러운 현세 긍정의 건강하고 낙천적인 자세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세 연에 이르러 나레이터와 눈썹 사이의 관계는 또 한번 질적 비약을 성취한다. 눈썹은 마침내 보름달(만월)을 성취하여 중천에 솟아오르게 되는 것이며, <나>와 만월 사이에는 또 한번의 눈맞춤, 그러나 당초의 눈맞춤과는 사뭇 차원이 다른 눈맞춤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나>와 <눈썹> 사이의 관계는 끊임없는 윤회로서의 관계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단순한 순환 반복의 그것이 아니라 초승달이 만월에 다다르기까지의, 또는 관능적 맹목적 생명력(피)이 그 육체적 숙명을 허울 벗고 해탈을 성취하기까지의 완전성에 끊임없는 상승으로서의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