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조선시대 국화의 상징
- 국화 심상의 시대별 변화 양상에 따라
Ⅰ.서론
Ⅱ.본론
1. 고려 말 이전부터 조선 초기까지
1-1. 고려 말 이전
1-2. 여말선초
2. 조선 초기부터 임진왜란 전후까지
3. 조선 후기 국화의 상징
Ⅲ.결론
Ⅰ.서론
국화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로 이루어진 사군자(四君子) 중의 하나로, 찬 계절에도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며 피어나는 기품이 서린 꽃이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우리 선조들에게 국화는 절개의 상징으로 통용되었으며, 특히 겨울에는 찬 서리를 맞으며 홀로 피어 있는 까닭에 속세와는 구별된 은자의 풍도를 보여주는 꽃으로 각인되어왔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우리 시조문학에서 나타난 국화의 심상과 의미를 살펴보고, 이것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서는 어떻게 변화였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은일자와 절개의 상징으로서의 국화와, 이후 계절의 흥취를 나타내는 모습으로 변모한...
본문/내용
조선시대 국화의 상징
- 국화 심상의 시대별 변화 양상에 따라
목 차
Ⅰ.서론
Ⅱ.본론
1. 고려 말 이전부터 조선 초기까지
1-1. 고려 말 이전
1-2. 여말선초
2. 조선 초기부터 임진왜란 전후까지
3. 조선 후기 국화의 상징
Ⅲ.결론
Ⅰ.서론
국화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로 이루어진 사군자(四君子) 중의 하나로, 찬 계절에도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며 피어나는 기품이 서린 꽃이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우리 선조들에게 국화는 절개의 상징으로 통용되었으며, 특히 겨울에는 찬 서리를 맞으며 홀로 피어 있는 까닭에 속세와는 구별된 은자의 풍도를 보여주는 꽃으로 각인되어왔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우리 시조문학에서 나타난 국화의 심상과 의미를 살펴보고, 이것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서는 어떻게 변화였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은일자와 절개의 상징으로서의 국화와, 이후 계절의 흥취를 나타내는 모습으로 변모한 국화의 모습, 마지막으로는 삶의 풍류 그리고 인생의 끝자락에 선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는 국화의 면모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Ⅱ.본론
1. 고려 말 이전부터 조선 초기까지
1.1. 고려 말 …
서리에도 굴하지 않고 늦게 피었으나 은은한 향기로 풍상이 칠 무렵에도 고고한 기상을 떨치는 국화의 모습은 선비의 고고함을 보여준다. 이는 국화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덕으로 연결한 것이다. 이처럼 국화는 다른 꽃들과 차별화 된 독특한 특성 때문에 절개를 의미하는 자연물로 표상되었다.
2. 조선 초기부터 임진왜란 전후까지
이 시기에는 여말선초에서 강화된 국화의 이미지가 전부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취흥 등 다른 의미로도 쓰이며 절개에 대한 이미지가 약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전과 달리 충절과 절개에 대한 이미지로 쓰인 시조의 수가 줄어듦과 다른 이미지로 국화가 쓰임을 통해 국화의 이미지가 변모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1) 송순(宋純, 1493-1583)
풍상(風霜)이 섯거친 날의 피온 황국화(黃菊花)를
금분(金盆)에 득 담아 옥당(玉堂)의 보내오니
도리(桃李)야 곳인 체 마라 님의 뜻을 알괘라
초장의 풍상은 시련과 역경을 나타내며, `금분`에 담은 `국화`는 정성스럽게 간직하며 지켜나가야 하는 지조를 상징한다. 한때 피었다가 쉽게 지는 도리와 대조를 이룬 국화는, 역경에서도 절개와 도리를 지켜 충성된 신하가 되라는 뜻으로 임금이 보낸 꽃이다.
이 시조의 창작 배경은 다음과 같다. 명종이 대궐의 국화를 꺾어 홍문관에 보내고서, 이를 소재로 노래를 지어 바치라고 하였다. 그러나 홍문관 관원들이 마땅히 지을 수가 없어서 숙직을 하고 있던 송순에게 부탁하여 지어 올렸더니, 임금이 크게 기뻐하고 상을 내렸다는 것이다. 송순은 국화를 하사한 임금의 의도를 국화와 같이 절개가 굳은 신하가 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임금에게 충성된 절개를 지키겠다는 자신의 강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송순은 국화뿐만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도리를 사용해 국화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와 같은 작품을 통해 조선 초기부터 임진왜란 전후까지도 국화가 오상고절의 심상으로 계속해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신계영(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