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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활동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활동
I. 리비아의 신석유개발정책
국제석유시장에서 석유의 수요공급이 팽팽하게 되고 또한 메이저(Majors) 이외의 옥시덴탈(Occidental)과 게티(Getty) 등 독립적 석유회사가 차츰 본격적으로 중동석유개발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국제석유시장의 독과점적 구조가 붕괴되기 시작하였음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산유국에 유리한 변화를 배경으로 하여 리비아의 카다피는 1969년 9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후, 리비아의 석유개발정책에 일대 혁신을 가져옴으로써 석유의 국제정치경제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카다피는 1970년 리비아가 맺고 있던 석유회사들과의 석유계약을 갱신하면서 직접 생산과 가격통제권을 장악하여 그 동안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이 이룩하려던 정책목표를 제일 처음 성취하게 되고, 곧 이어 타 산유국가들에게도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되었다. 산유국 중에서는 제일 먼저 리비아가 대석유자본과의 불평등한 계약을 산유국에 유리하게 갱신할 수 있었던 것은 리비아의 특수 여건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리비아산 원유가 저유황으로 경제적이고 환경오염이 낮을 뿐더러 중동산보다 서구와 미국으로 수송하기에 비용이 적게 드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타지역 원유보다 고가를 요구할 수 있는 구실이 있었고, 또 리비아의 원유에 거의 전적인 공급을 의존하고 있는 메이저 이외의 독립계 석유회사들에 대한 공급중단위협 내지는 석유산업의 국유화위협이 효과를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리비아에는 메이저는 물론 헌트(Hunt), 콘티넨탈(Continental), 마라톤 및 옥시덴탈과 같은 독립계 석유회사(independent)들이 석유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는 바, 이들 독립계 석유회사들은 리비아 이외의 지역에…
II. 제1차 석유파동
여하간 산유
이션을 감안하여 매년 2.5%씩 인상하는데 동의하였다.
뿐만 아니라 산유국에 지불될 로열티와 세금도 종래의 50% 수준에서 55%로 인상하는데 합의하였다. 그 대가로 석유회사들은 산유국으로부터 석유가의 안정과 산유국정부의 세수에 대한 5년간의 공약을 얻어내는 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테헤란협상에 이어 동년 4월에는 유사한 협정이 트리폴리에서도 맺어져 국제석유시장은 테헤란-트리플리 협정에 의하여 안정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테헤란-트리폴리 협정이 어렵게 이루어진 지 불과 반년도 못되어 미국의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은 미국경제의 방어를 위하여 달러화의 금태환정지와 10%의 수입부가관세를 포함한 신경제정책``을 발표하게 됨으로써 테헤란-트리를리 협정의 기초가 되었던 달러화의 가치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동협정의 효력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말았다. 따라서 산유국들은 실질적으로 닉슨의 신경제정책을 공식화해 준 스미소니언 통화협정 이후 국제통화체제의 변화에 상응하는 유가에 대한 새로운 협정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1972년 1월 산유국과 석유회사 대표들이 제네바에서 회동하고 페르시아만산 원유를 배럴당 2.48달러로 인상하고 환율변동에 따르는 유가의 연동제를 채택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협정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산유국들은 단순한 유가의 인상에 만족치 않고 자국에 투자하고 있는 석유회사의 소유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즉 1972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및 아부다비와 주요 석유회사간에 회사의 소유권에 대한 협정이 체결되었는 바, 산유국의 회사소유권을 25%에서 시작하여 1982년에는 51%선까지 증가시켜 산유국이 실질적인 운영권을 갖게 되는 데 합의하였다. 이를 기점으로 거의 모든 산유국들이 서방의 대석유자본들과의 소유권에 관한 본격적인 협상을 벌이게 되었으며, 국제석유시장의 운영권이 메이저로부터 산유국으로 넘어가는 국제석유시장의 정치경제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하간 산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