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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형성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형성
I. 국제석유시장의 종속현상
국제석유시장은 1973-74년에 발생한 제1차 석유파동 당시까지도 생산, 수송, 판매 등에서 소위 메이저(Majors) 혹은 7자매(Seven Sisters)라고 불리우는 미 영 네덜란드 등의 대석유자본에 의해 오랫동안 지배되어 왔다. 즉 국제석유시장의 독과점 현상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미국의 스탠다드석유회사(Standard Oil Corporation)에 의해 시작되어, 19세기 후반에는 몇몇 대석유자본들이 생산과 공급을 상호담합에 의하여 통제하면서 시장을 독점하고 가격을 조작하여 타의 참여와 경쟁을 배제시키는 전형적인 독과점적 전략을 추구하여왔던 것이다.
대석유자본에 의한 국제석유시장의 독점과 지배는 몇몇 다국적기업의 힘뿐만 아니라 이들이 모국정부로부터 정치 외교적 지원을 받아 더욱 철저히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국제정치와 국제석유시장의 함수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석유자원은 네덜란드에 의하여,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영국과 프랑스에 의하여, 그리고 남미의 베네주엘라는 미국에 의하여 지배되어 왔다는 사실에서 북의 선진공업국들의 제국주의적 정치세력이 이들 국가들의 석유자본이 진출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남의 석유자원보유국들은 강력한 정치 및 군사적 힘의 지원을 받고 있는 독과점적 대석유자본들과의 상거래에서 약자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세계석유산업의 불평등한 계약에 기초한 종속적 현상의 초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대부분의 석유자원국들은 미미한 로열티(royalty)만 받고 그들의 주요 자원개발을 통째로 대석유회사들에 위탁시킴으로써 국제석유회사들이 생산과 판매를 총괄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국제석유산업의 종속체…
II. 국제석유시장의 변화
또한 석유회사들의 모국의 주요 정치집단들이 석유가의 인하를 원치 않고 있는 사실과도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예로서 당시 서구에서 강력한 정치압력단체화하고 있던 석탄산업에 종사하는 집단들은 석유가의 인하가 그들 산업에 타격을 줄 것을 두려워하여 이를 반대하였고, 또한 미국에서도 국내석유업자들이 해외의 저가석유가 국내로 수입될 경우 받을 피해를 우려하여 해외석유가의 인하를 반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서구와 미국의 주요 국내정치 압력집단과 대석유회사들의 이익이 영합하여 국제석유가격을 실제 시장가격 이상으로 높게 조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석유자원국과 대석유회사간에 이익을 둘러싼 충돌이 있을 경우 대석유회사의 모국정부가 정치 군사적으로 개입하여 석유회사의 이익을 계속 보호하여 주어 국제석유시장의 종속현상이 상당 기간 계속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1950년대에 이란의 무하메드 모사데 정권이 이란에 투자하고 있던 영구석유회사를 국유화하려 하자 영국과 미국이 개입하여 모사데그를 축출하고 샤(Shah) 정권을 수립한 예에서 단적으로 보여지고 있다.
다시 말해 정치종속관계가 석유산업의 종속관계를 유지시켜 준 좋은 예를 이란 석유회사의 운명에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II. 국제석유시장의 변화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여러 가지 국제환경의 변화는 7자매에 의한 국제석유시장의 독과점을 점차 어렵게 만들고, 석유자원국과 대석유회사 및 그들의 모국정부와의 역학관계에 서서히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우선 국제석유산업의 독과점적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이유는 7자매 이외의 독립계 석유회사(independent oil company)와 또는 정부직영의 국영석유회사들이 점차 국제석유시장에 참여하여 기존의 다국적석유회사들과 경쟁을 별이게 된 데 있다. 즉 옥시덴탈(Occidental), 마라톤(Maraon), 헌트(Hunt) 및 게티(Getty) 등 석유회사들이 기존의 메이저(Majors)와 경합하면서 특히 알제리, 리비아, 나이지리아 등 북아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