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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금융위기의 정치경제
동아시아 금융위기의 정치경제
이코노미스트지(the Economist)는 1992년 9월 19일자에 다음과 같은 예언적 기사를 실은바 있는데, 1990년대의 금융위기를 맞이하여 생각하게 하는 바가 많다.
`지금으로부터 20년 후에 경제학자들은 1980년대를 국제외채위기의 연대나 혹은 달러화의 가치 부침의 연대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레이거노믹스나 통화주의(monetarism)로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힘의 결정적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1980년대는 결정적 변화를 목격하였다.
1980년대에 국가의 금융시장의 많은 국경선이 무너졌으며, 진정한 글로벌자본시장이 등장하게 되었다. 지난 연대는 바로 이것 때문에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다음 연대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전 세계적 투쟁으로 기억될 것이다.`
I.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원인
1970년대 이후 아시아의 제 마리 용`이라고 호칭되는 한국을 비롯한 싱가포르, 대만, 말레이시아 등 대외지향적 경제성장정책을 추구한 신흥공업국가들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동아시아 발전모델에 대한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교육과 도덕, 내지는 윤리사상을 중시하는 동양의 유교문화와 전략적 산업정책을 강력히 추진해온 권위주의적 지도력, 그리고 국가주도하의 수출지향적 발전전략 등이 어우러져 기적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 평가되었다.
그러나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시장논리에 기초하기보다는 권위주의적 정권의 개입에 의한 왜곡된 발전을 도모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경제체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로 인해 난관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1990년대에 들어…
II. 동아시아 금융위기의 발전
금융위기 전후의 아시아 경제지표
유고(foreign reserve)가 충분치 않은 시점에서 자본시장의 준비되지 않은 개방과 자유화는 외부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1997년 10월 위기발생시 한국정부의 가용외환보유고는 222억 달러였지만 이를 환율방어에 무리하게 소진하고 12월 초에는 불과 60억 달러 이하로 하락하였으며 원화가치도 불과 두달만에 20%나 하락하였고 지불유예라는 국가파산상태의 일보직전까지 몰리게 되었다. 아래의 그림은 금융위기 전후의 아시아의 경제성장률과 외자 유입액을 보여줌으로써 1997년의 경제위기가 얼마나 심각했던가를 보여주고 있다.
금융위기 전후의 아시아 경제지표
동아시아 국가들이 급격한 경제위기를 체험하게 된 원인은 경제제도와 이의 운영상의 문제점과 본격화되는 자본시장의 개방화의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하지 못한 정책적 결함도 있었지만, 사회전반의 부패에 따른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와 경제논리를 무시한 정치논리의 우선이 또한 위기를 자초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