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한국 선사고고학 논문 요약 및 비평
‘신석기시대 생계방식의 변천과 남부 내륙지역 농경의 개시 ’
신석기 시대상으로 출토된 많은 패총들로 인해 그 당시 한반도에서는 활발할 어로생활이 있었다는 것과 그 외 수렵 & 채집 생활을 했다는 정도가 기억에 남아있었다. 대동강과 한강에 신석기 문화가 발전했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말을 읽으면서 알게 된 논문의 키 포인트 와 나의 생각은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생업경제는 어로 중심 경제에서 식물위주 채집경제로, 그 다음으로 조 농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왜 국사교과서에 빗살무늬토기가 가장 많이 언급이 되는지 오산리식 문화를 밀어내고 한반도 전국적으로 빗살무늬토기가 사용 된 것과, 중기 이후 조 문화의 형성, 어로생활보다 경제적 비용이 높은 내륙지방으로의 이동 이유는 인구증가와 빗살무늬토기문화수용, 채집경제에서 식량생산경제체제로서의 체계변화, 이로 인한 생업경제의 변동과 주거생활 입지선택기준과 밀접과 저비용 고효율 효율성 등이 내 눈에 키 포인트로 보였고 수업시간에 공부했던 내용들이 시나브로 생각나게 해주었다.
먼저 신석기 시대의 생계방식의 변천과정 중 ‘어로중심의 채집경제’ 파트를 읽고 요약을 해보려고 한다. 한반도의 환경이 홍적세에서 충적세로 바뀌는 환경변화는 식단의 변화를 가져온다. 홍적세와 충적세의 정의도 붙이자면 먼저 홍적세는 신생대의 마지막 단계이며 오늘날과 같은 기후상태와 대륙빙하가 발달하였던 시기가 교대로 나타나는 대단히 불안정한 기후로 특징되는 시기로, 빙하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충적세의 경우는 홍적세 이후의 현재까지의 …
형태에 따른 도토리 제분방식의 유추와 그에 따른 저장용 시설의 유무 유추를 할 수 있었다. 갈돌 갈판의 모양이 점점 효율적으로 변해감에 따라 생계자원에 있어서 식물재료의 비중이 높아져 감을 의미한다. 또 이는 저장용기의 발달에도 이바지 한 것과 신석기시대의 정착생활에 크게 한 몫을 한것이다.
‘조의 경작’ 파트에서는 견과류에 이어서 점점 식물자원에 대한 신석기 인들의 관심이 높아 짐에 따라 초기농경사회의 진입 과정을 요약해 보려 한다. 우리나라는 신석기 거주 지역 대부분이 강안충적지로서 환경적 영양분이 풍부하고 배수가 잘 되어 초기농경에 유리한 편이다. 지탑리 유적에서 출토된 조와 피 재배 흔적은 신석기시대 전기 말부터 시작된 초기농경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조의 재배방식은 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하는자는 중요한 문제이다. 중서부지역에서 출토된 자료들은 아직 정형화 된 도구들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한반도에서 신석기시대 초기농경사회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피의 경우는 조 보다 수확량이 적어 주된 작물이 아니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조 농경의 유래는 화북지역에서 기원전 7000년 전에 재배가 시작되었음을 보아 이쪽에서 유래되었을 거라 보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조 재배 정보의 입수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견과류의 수확량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줄어들고 생산능력이 좋은 조가 이를 대체 하였다.
‘남부내륙지역의 농경개시’ 중 입지조건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4대강과 유사한 큰 강들 주위에 입지 한다. 하천과 지류가 합류하는 충적대지나 충적대지와 이어지는 낮은 구릉상에 위치한다. 유적들은 낙동강, 남강, 섬진강과 금강 수계에 집중되어 있다. 강 본류보다는 지류쪽에 위치를 한다. 지류면은 면적은 좁을 지라도, 강물이 곡류하면서 토양을 퇴적시켜 충적지를 형성하고 침수와 배수가 이어진 후 토질이 좋아지는것을 이용하여 초기농경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지역들은 난지수가 100이상되는 같은 기후지역대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