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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문화와 예술] 스페인 국토 회복 전쟁의 과정과 영화 ‘엘 시드’ 감상문
처음 과제를 보고 엘시드 영화를 보려고 했을 때 그 분량에 조금 당황했었습니다. 세시간 분량이라 매우 방대한 내용의 영화라 생각이 되었고 제작년도 또한 1961년 영화라 보는데에 많이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엘시드의 주요 내용에 대해 살펴보면 엘시드라고 불리는 영웅 로드리고 디아스 데 바바르의 삶과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하여 이베리아 반도에 위기가 찾아오는 시기인데 그 위기를 로드리고라는 영웅이 활약하여 극복해내는 과정이 보여집니다. 처음 시작 이후 주인공 로드리고는 이슬람 세력의 왕을 포로로 잡았었고 처형을 해야한다는 왕명을 거역하고 그들에게서 다시는 침략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고서는 풀어주게 됩니다. 이것으로 포로였던 이슬람국 왕이 로드리고에게 자신들은 정의를 알고 자비를 베풀줄 아는 전사에게는 ‘엘 시드’라고 부른다며 로드리고를 엘 시드라고 칭합니다. 이 도움으로 로드리고 또한 위기상황에 이들 이슬람 왕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 힘을 합치기도 합니다. 당시의 시대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국민적 정서가 이슬람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했을 시절이었을 텐데 주인공은 그러한 분위기와 다르게 그들에 대해 조금은 관용적이고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였고 이것이 훗날에 그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흔히들 역사는 승리자의 역사라고들 하는데 유럽은 현재 세계에서 보았을 때 분명 승리자이고 우리가 배우는 역사의 큰 흐름도 유럽과 서양 위주의 역사 그리고 그들에게 긍정적인 역사가 주 내용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을 본다면 기독교 세력은 정상적인 모습으…
레콘키스타=국토회복전쟁의 전개 과정
배경 및 개요
레온왕국의 성립
나바로왕국, 아라곤, 카스티야 왕국의 성립
전투 이후 1492년까지 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레온왕국의 성립
718년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영주였던 아스투리아스 펠라기우스는 이슬람의 지방 영주인 무누자에게 반기를 들었고 이후 펠라기우스는 코바동가 전투를 치르게 됩니다. 이 전투는 기본적으로는 이슬람 영주에 대항한 기독교 귀족의 반란이었긴 하지만 이 전투 이후에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국가 회복이라는 명분을 제공하였습니다. 778년 카롤루스 대제의 이베리아 침공이 있었는데 초기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북부지역을 장악하며 승리하였으나 론세스바예스 전투에서 크게 패하였고 카롤루스는 이 전투에서 유명한 기사 롤랑까지 잃게 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슬람에 쫓겨 피레네 산맥 서쪽으로 쫓겨 간 에스파냐 귀족들은 아스투리아스에 왕국을 세웠고 서고트의 왕자 펠라요를 국왕으로 세웠습니다. 알폰소 1세는 갈리시아를 신왕국으로 합병했으며 칸타브리아 산맥을 넘어 남하하여 레온 지역을 정복하였고 그뒤 여러 왕은 산간지방에서 중앙 평야로 진출하고 남부에서도 군사상 성공을 거두었고 아스투리아스 최대의 왕 알폰소 3세는 영토를 넓혀 두에로 강 일대까지 확대하였습니다. 이때까지는 아스투리아스-레온 왕국으로 불리었으나 뒤를 이은 가르시아 1세는 수도를 오비에도로부터 레온으로 옮겼고 이후 가르시아의 후계자들은 아스투리아스의 왕이라는 칭호 대신 레온 왕이라는 칭호를 즐겨 쓰기 시작했으며 레온왕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카스티야는 본래 레온왕국의 백작령이었으나 961년 레온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고 카스티야와 레온간의 분열로 인해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세력은 약화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988년 레온시는 만수르의 침입을 받아 파괴되기도 했습니다.
나바로왕국, 아라곤, 카스티야 왕국의 성립
에스파냐 동쪽에서는 카롤루스 대제가 설치한 에스파냐 변경주가 10세기부터 나바로 왕국을 세웠으며 초기에는 팜플로나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10세기부터는 국토회복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에브로 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