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포르투칼이란 나라에 대하여
포르투칼 나라의 정식 명칭은 포르투갈공화국으로, 한반도의 약 2/5가량의 면적과 천만 명 가량의 인구로 구성된 축구에 열광하는 나라이다.
포르투칼을 구성하는 민족은 이베리아족, 켈트족, 라틴족, 게르만족, 무어족등이 있으며, 수도는 타구스 강이 포함 된, 리스본으로 우리나라의 서울과 같이, 30%의 인구가 이 주변에 밀집되어 있다.
포르투칼의 언어는, 포르투갈의 공용어 포르투갈어이나, 형제언어라 할 수 있은 스페인어 역시 필요에 따라 사용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이해할 만큼 그 이용도가 높은 수준이다.
포르투칼의 종교는 무려 90%이상이 가톨릭이며, 이와 관련하여 많은 문화제와 역사들이 존재한다.
포르투칼의 화폐와 정치는 유럽그룹에 속한 나라인 만큼, 유로(Euro)의 화폐와 내각 책임제의 정치형태를 가지고 있다.
2. 포르투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하여
`이베리아 반도의 지형`
어떤 나라의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그 나라가 있던 곳의 지리와 지형을 알아야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 나라가 무엇을 바탕으로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포르투갈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흔히 ‘이베리아 반도(Pennsula Ibrica)’라고 부르는 곳이다. 반도란 사전적 의미로 ‘세 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한 면이 육지 또는 대륙과 연결되어 있는 땅을 말하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크게 3개의 반도가 보이는데 가장 유명한 로마가 있던 `이탈리아 반도`, 그리스가 있는 곳이자 오늘날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발칸반도’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이다. (우리나라 또한 반도 국가이다)
이러한 반도의 가장 큰 특징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해주는 육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대륙 세력이 해양으로 진출할…
`피레네 산맥과 에스파냐 중부 고원지방의 라만차 지역`
성장하였다.
히스파니아 - 로마와 카르타고, 그리고 지중해 문화로의 편입
비록 이베리아 반도가 그 내부적으로 수많은 이민족이 거치면서, 상업적으로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의 변방에 불과했다. 이러한 이베리아 반도가 지중해 문화로 편입되며 서유럽 문명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로마 시대부터였다. 로마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을 때 그들은 이베리아를 ‘토끼가 많은 땅이라는 뜻’으로 히스파니아라고 불렀다.
하지만 로마가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오기 이전에 이베리아 반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세력은 단언컨대 ‘카르타고’였다. 카르타고는 고대 페니키아 인들이 북아프리카의 튀니스만 연안에 건설한 도시국가 였으며 그 세력은 점차 커져서 기원전 6세기에는 지중해 전역의 해상 무역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카르타고 인들은 경제적 이해 때문에 그리스 인들과 자주 충돌했는데 그들은 먼저 스페인 연안 교역로를 장악하기 위해 이비사(Ibiza)섬에 중개 기지를 설치하여 대규모로 염전을 건설하면서 그리스 인들의 통상 활동을 차단했다. 이 과정에서 기원전 535년에 코르시카의 알레리아(Aleria : Alalia)에서 해전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를 카르타고가 승리로 이끌면서 아프리카 북부, 이베리아 반도의 남단, 시칠리아, 사르데냐 및 지중해의 스페인령 여러 섬 등 옛 페니키아 인들의 식민지를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이 지역들은 훗날 로마 침공의 전략 기지로 활용되었다.
로마가 이베리아 반도를 완전히 점령한 이후에 이베리아 반도에서 로마의 문화는 급속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로마의 법률과 행정 체계가 전파되었고 건축이나 문화등 총체적인 면에서의 로마화가 진행되었다. 유명한 철학자 ‘세네카’와 오현제중에 한사람이 트라야누스 황제도 히스파니아, 즉 이베리아 출신이었다. 로마는 크게 두가지면에서 이베리아 반도에 큰 영향력을 미쳤는데 첫 번째가 기독교의 전파이다. 로마의 기독교가 이베리아 반도에 전달되면서 이베리아의 사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