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제주해녀 박물관
제주해녀를 알게 해준 제주 해녀 박물관
2014년 5월 29일 ‘제주해녀의 이해’강의의 과제작성과 제주 해녀를 알아보기 위해 제주 해녀 박물관을 탐방하기로 하였다. 해녀 박물관은 구좌읍 하도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해녀 박물관이 평일에만 개장을 하고 제주도 동쪽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어서 평일에 강의를 듣고 있는 내게는 찾아가기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래서 해녀박물관에 방문하기 전에 ‘제주해녀의 이해’를 듣는 친구들과 함께 가기로 약속을 하고 친구들과 카 셰어링을 통해 같이 다녀오게 되었다.
학교에서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해녀 박물관으로 찍어보니 약 40km로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해녀박물관 앞에 도착하니 바로 앞에 이러닝 강의에서 나온 ‘제주 해녀 항일운동 기념탑’이 보였다. 강의 영상을 보았을 때 본 기억이 나서 이전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지만 전에 와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주 해녀 항일운동 기념탑’은 1931년 6월부터 야학에서...
본문/내용
제주해녀 박물관
제주해녀를 알게 해준 제주 해녀 박물관
2014년 5월 29일 ‘제주해녀의 이해’강의의 과제작성과 제주 해녀를 알아보기 위해 제주 해녀 박물관을 탐방하기로 하였다. 해녀 박물관은 구좌읍 하도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해녀 박물관이 평일에만 개장을 하고 제주도 동쪽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어서 평일에 강의를 듣고 있는 내게는 찾아가기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래서 해녀박물관에 방문하기 전에 ‘제주해녀의 이해’를 듣는 친구들과 함께 가기로 약속을 하고 친구들과 카 셰어링을 통해 같이 다녀오게 되었다.
학교에서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해녀 박물관으로 찍어보니 약 40km로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해녀박물관 앞에 도착하니 바로 앞에 이러닝 강의에서 나온 ‘제주 해녀 항일운동 기념탑’이 보였다. 강의 영상을 보았을 때 본 기억이 나서 이전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지만 전에 와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주 해녀 항일운동 기념탑’은 1931년 6월부터 야학에서 민족의식을 키워온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등 구좌읍, 성산읍, 우도면 해녀들이 일제의 극심한 수탈에 항거, 1932년 1월까지 연인원 1만 7천여 명에 이르는 …
불을 지폈다고 한다. 해녀들은 바구니를 지고 가서 불 턱에 놔두고 물질을 하다가 밖으로 나와서 불을 쬔다고 하였다. 어렸을 때 친구네 집 쪽에 있는 바닷가를 자주 갔었는데, 돌로 쌓여진 돌담이 있었었다. 우리는 항상 바닷가에 갈 때 마다 그 안에서 놀기도 하고 귤과 불량식품을 먹은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해녀들의 불 턱을 사용하는 용도와 알맞게 사용한걸 보면 그 당시 해녀들은 불 턱을 쉬기 좋게 편안한 구조로 만들었던 것일지 모른다.
불 턱을 지나 2전시실에서 눈에 띄는 것은 출가 해녀였다. 왜냐하면 버튼을 누르면 우리나라, 중국의 다롄과 칭따오, 일본의 여러 지역,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해녀들이 물질을 한곳이 불빛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불빛이 나오는 곳은 제주도에서 상당히 먼 지역들이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하여 다른 나라에 까지 가서 해산물을 착취해 오는 해녀들의 모습이 생존력이 강한 해녀들의 모습을 나타내는 듯 했다.
`바다“인 3전시실을 지날 때 해녀의 강인함을 담은 얼굴과 어로, 해양문화에 관한 속담이 담긴 액자를 지나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린 해녀의 모습이었다. 초등학생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 소녀들이 해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친구들과 뛰어놀 나이에 해녀 복을 입은 상태로 찍은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해녀가 되기 위해 잠수를 배우고, 해산물 채취하는 것 까지 배우는 과정과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가 숨을 참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안쓰럽기만 했다. 이 사진들을 지나 3전시실에 도착하였다. 이 곳 에서 가장 기억 남는 것은 멸치잡이이다. 요즘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인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큰 그물에 멸치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제주 사람들은 김녕, 월정 등 모래사장과 암반이 발달한 지역에서 멸치잡이를 주로 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땀, 그리고 일손이 필요한 멸치잡이는 제주 사람들에게 의미 있었던 일 중에 하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