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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학원론 - 로이드 코퍼레이션
런던의 커피 전문점에서 출발한 해상보험 “로이드 코퍼레이션”
성립-17세기 말부터 영국에서는 해상 운송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이에 따라서 항해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선박과 화물의 위험을 인수하여 해상사고가 발생할 경우에 개인 재산을 바탕으로 자신이 인수한 위험부분에 대하여 배상하는 투자자인수방식의 보험투자자가 많아졌다.
당시 런던에는 여러 곳에 커피점이 생겼는데, 이러한 커피점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여기에 모여 새로운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을 즐기며, 심지어는 커피점을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1688년 에드워드 로이드(E. Lloyd)는 런던의 템스강 선착장 가까운 타워 가에 커피점을 열었고 운영하는 가게가 선원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이유인즉 주인장 로이드가 선원들의 소문을 토대로 선박과 항해, 물가에 관한 ‘로이드 리스트’를 작성해 배포했기 때문이다. 로이드는 손님에게 보다 정확하고 빠른 소식을 제공하고자 노력하였다. 당시 런던에는 민간 신문이 없었고 London Gazette라는 관보만이 존재하였는데, 로이드의 이러한 정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이었다.
로이드의 러너라고 불리는 심부름꾼을 고용하여 선박의 입. 출항 사실을 템스강의 선착장에서부터 가게까지 달려와 전하게 했다. 또한 해상사고 등 중대한 소식이 있을 때에는 가게 모퉁이에 설치된 연단에서 키드니 라고 불리는 종업원이 이를 큰 목소리로 공표하도록 하였다. 손님들을 위한 로이드의 탁월한 서비스 탓인지 커피 전문점은 연일 사람들로 북적였고 선박매매 및 경매, 적하거래 등도 주기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가게 한쪽에서는 늘 항해와 항로, 선박에 관한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해상활동과 관련된 보험이 필요한 사람은 언제든 이곳을 찾았고 그 결과 로이드의 커피 전문점은 어느새 해운업자와 보험업자로 가득 찬 해상보험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에드워드 로…
자들만으로 한정하였다. 이후 새로운 로이드 커피점은
아예 그 대상자를 로이드 협회 회원만으로 한정하였다.
발전-(1)왕립거래소로의 이전
로이드의 커피 하우스에서 비롯된 해상 보험업이 80여년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조직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새로운 로이드 커피점은 처음부터 보험인수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그 장소가 협소하고 여러 가지 불편이 많았다. 1774년에 당시 로이드 위원회의 의장이던 존 앵어스타인은 그동안 로이드 협회에서 모은 기금을 바탕으로 로이드 커피점을 런던의 콘힐에있는 영국 왕립거래소 안으로 이사하였다. 왕립거래소에 위치하게 되면서부터 로이드는 더 이상 커피를 팔지 않았다.
(2) 로이드의 법인화 작업과 새로운 보험의 인수
왕립거래소로 이전한 이후 로이드는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 그리고 연이어 계속된 나폴레옹 전쟁 등으로 파산위기에 놓이기도 하였으나, 전쟁 이후의 보험요율의 상승으로 이러한 위기를 면하면서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또한 해상보험시장의 매력이 널리 알려져 이에 참가하려는 자들도 늘어났다.
당시 영국에서는 회사설립을 극단적으로 통제하는 ‘거품회사급지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법은 17세기 영국의 식민지 개척으로 유한책임제도를 악용하는 부실회사들의 등장을 막기 위해 각종 회사의 설립을 제한하는 것이 취지였다. 이것은 결국 특정분야에서 독점화를 낳았는데, 1824년에는 보험회사의 독점권을 인정한 이 법률의 폐지로 인하여 보험시장에 대한 독점이 사라지게 되었다. 로이드는 보험시장의 독점폐지로 늘어난 여러 보험회사와의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서 회원 상호 간의 결속 및 규제를 강화하였다. 또한 로이드 위원회에 법적 권한을 부여하기 위한 의회제정 입법도 추진되었다. 이 결과로 1871년에 영국의회에서 로이드 법이 제정되었으며, 로이드는 법인격을 부여받아 Corporation of Lloyd`s 라는 명칭을 가진 법인이 되었다. 로이드 법은 로이드 위원회에 회원의 규제와 자금의 운용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