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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IMF체제의 확립(국제통화 및 환율제도의 변천, 자원파동과 무역환경의 변화)
신IMF체제의 확립
1. 국제통화 및 환율제도의 변천
브레튼우즈체제가 지니고 있던 가장 중요한 구조적인 문제점은 미국의 국내통화인 달러화를 국제기축통화로 지정한 것이었다. 전후의 핍절한 세계경제 사정으로 보아 이 같은 결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국의 경제가 회복되고 국제교역량이 증대되면서 브레턴우즈체제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점차 심각하게 노정되기 시작하였다. 소위 유동성(流動性)과 신인(信認)의 딜레마라고 불리워지는 국제적인 유동성의 부족과 달러화의 신인문제가 대두된 때문이었다.
브레튼우즈체제하에서는 국제유동성의 공급을 금과 연계된 달러화로 충당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금의 연간 생산량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으며, 그 가치 또한 1온스 당 35달러로 묶여 있어, 무역대금 결제를 금으로 할 경우 금의 실제 가치상승분이 결제대금가격으로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에 각국은 금에 의한 대금결제를 꺼리게 되었다. 따라서 금은 국제유동성의 보조수단은 될지언정 본격적인 결제수단인 국제유동성으로서는 적합하지 못한 형편이었다. 따라서 매년 급증하는 국제유동성의 수요는 결국 미국이 공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달러화는 국제기축통화이면서 다른 한편 미국의 국내화폐였으므로 미국 점부는 국내화폐 공급과 국제통화 공급이라는 서로 조화될 수 없는 이중적인 은행의 역할(dual bank role)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달러화의 이러한 이중적인 성격, 즉 달러화의 공급확대가 국내적으로는 인플레를 야기하고 국제적으로는 막대한 금준비를 필요로 하는 한편 미 달러화의 해외유출은 그만큼 미국의 대외채무가 된다는 구조적인 이유 때문에, 미…
그러나 1960년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경상수지 흑자폭보다 자본수지 적자폭
러방어조치를 취하는 사태로 발전되었다.
2.76%, 2.76%씩 평가절상하기로 합의하였다. 스미소니안회의에서는 브레튼
평가, 즉 패
리티의 변경시 반드시 IMF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IMF는 고정환을
제도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각국의 국제수지가 심각한 국면에 이를 때
까지도 환을조정을 연기하는 정책을 사용하여 필요 이상으로 외환시장의 혼
란을 초래하였다. 더욱이 브레튼우즈체제의 이상이었던 국제수지의
자동조절메커니즘은 효율적으로 작동되지 못하였고, 각국의 국제수지 불균
형은 심화되는 한편, 외환시장은 여러 차례 파동을 겪게 되어 국제외환 및
금융시장은 매우 불안정하게 되었다.
고정환율제도의 고수노력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1958년 프랑화(鑛)를
14.9%나 대규모 평가절하하였고, 1961년 독일 마르크화와 네덜란드 길더화
는 오히려 평가절상되었다. 영국의 파운드화는 1963년부터 약화되기 시작하
여 1967년에는 대규모 평가절하를 하였고, 프랑스는 1969년에 재차 11.1%
의 평가절하를 단행하였다. 친후 독일에는 막대한 자본이 유입되었는데, 독
일은 1969년 9월에 외환시장 개입을 정지하고 일시적으로 변동환율제를 채
택하다가 1969년 10월 27일, 드디어 9.3%의 평가절상을 단행하였다. 이러한
외환파동 때마다 미국의 달러화와 그 가치가 연계 고정되어 있었던 금의
가격 이 폭등하였다.
1971년 12월에는 달러방어조치 이후의 국제통화질서를 논의하기 위한
각국 재무장관회의가 미국 워싱턴의 스미소니안박물관(Smithonian Insti-
tute)에서 개최되었다. 스미소니안회의를 계기로 국제통화 금융제도는 새
로운 변혁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이 회의에서는 미국의 달러화를
7.89%(금 1온스당 달러화 35달러에서 38달러로 조정) 평가절하하고, 일본 친
화, 독일 마르크화, 네덜란드 길더화, 벨기에 프랑화를 각기 7.66%, 4.61%,
2.76%, 2.76%씩 평가절상하기로 합의하였다. 스미소니안회의에서는 브레튼
우즈체제의 중요한 골격인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고정환
율제도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