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미국 남북전쟁
미국 내전(영어: American Civil War)은 미국에서 일어난 내전으로, 한국어,중국어,일본어권에서는 흔히 미국 남북 전쟁(美國南北戰爭)이라고 부른다. 1861년 4월, 노예제를 지지하던 남부주들이 모여 남부연합을 형성하며 미합중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한 뒤, 아메리카 남부 연합군(이하 `남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항의 섬터 요새를 포격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1865년까지 4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전쟁 결과 남군이 패했고,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연방분리의 원인
노예제 논쟁
미국의 노예폐지 운동은 18세기부터 시작되었다. 1775년 첫 반-노예제 모임이 필라델피아에서 만들어졌고, 펜실베이니아 주 의회는 처음으로 《노예해방법》을 1780년에 통과시켰다. 이 후 4개의 다른 북부 주들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했으며, 1787년 북서부 영토(지금의 오하이오 주 및 그 주변)에서도 〈북서부 조례〉를 통해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이로 인해 노예제를 폐지한 북부와 노예제를 여전히 법으로 인정하는 남부의 두 지역으로 나뉘게 되었다. 물론 북부에서 노예제에 반대한 이유는 북부 사람들이 인도주의자들이어서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공업이 발전한 북부에서는 값싼 흑인 노동자가 더이상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남부의 자유주 확대에 대한 우려
노예 소유를 허용하는 남부와 금지하는 북부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링컨은 당시 노예제를 시행하는 주들에서 노예제를 철폐하는 법안을 제안하지는 않았지만, 1858년 `분열된 집에 대한 연설`에서 `노예제의 확산을 막고, 국민의 마음 속에 노예제의 궁극적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믿음을…
1845년 미주리 타협선의 연장은 텍사스 병합 결의문의 일부였고, 1850년 타협과 1860년의 크리튼덴 타협에서는 이 선을 태평양까지 연장하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로 합병한 것은 멕시코 전쟁(1846-1848)을 촉발시켰고, 새 영토에서의 노예제 시행에 대한 갈등은 1850년 타협으로 잠시나마 진정시킬 수 있었다. 1850년 타협의 〈윌모트 조항〉은 북부 정치가들이 멕시코로 부터 정복한 영토에서 노예제를 철폐하기 위한 노력에 따른 것이었다. 헤리엇 비처 스토가 쓴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1852)이 인기를 끌면서 북부에서는 1850년 타협의 결과물인 도망노예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져갔다.
오스텐드 성명(Ostend manifesto, 1854)을 통해 남부는 쿠바를 노예주로 합병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캔자스-네브래스카 법(1854)에서는 미주리 타협이 노예제를 금지한 지역에 대한 노예제 폐지 여부를 국민주권에 따라 투표로 결정하도록 했고, 이 법이 통과된 뒤 제2기 정당 구조는 무너졌다. 또, ‘피의 캔자스’ 논란 중 캔자스 주에서의 노예제를 둘러싸고 미주리 주의 노예제 지지자들인 보더 러피안(Border Ruffians)에 의해 자행된 대규모 부정 선거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 부정 선거는 친-남부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피어스(미국 14대 대통령)와 제임스 뷰캐넌(미국 15대 대통령)이 캔자스를 노예주로 인정하려는 시도를 하게 했다. 뷰케넌은 노예제 시행에 대한 구문을 포함한 캔자스 주 헌법안인 르컴튼 헌법을 지지했다.
캔자스에서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은 와카루사 전쟁, 로렌스 약탈 사건, 공화당 상원의원 찰스 섬너에 대한 하원 의원 프레스톤 브룩스의 상원 의회 구타 사건, 포타와토미 학살(Pottawatomie Massacre), 블랙잭 전투, 오사와토미 전투(Battle of Osawatomie) 그리고 마래 데 시뉴 대학살(Marais des Cygnes massacre) 등의 폭력적 형태로 나타났다. 그 후 1857년 대법원의 ‘드레드 스콧 판결(Dred Scott decision)’은 캔자스를 포함하여 다수가 노예제를 반대하는 지역에서조차 노예제를 허용할 수 있도록 했다.
노예 반란을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