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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맹자(孟子, 기원전 372년~기원전 289년)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 발전시킨 유학자이다.
전국 시대 추(鄒)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가(軻)이고, 자는 자여(子輿) 또는 자거(子車)이다. 어릴 때부터 공자를 숭배하고, 공자의 사상을 발전시켜 유교를 후세에 전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맹자의 생애
생몰 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공자가 죽은 지 100년쯤 뒤에 산둥 성 쩌우청 시에서 태어났다. 그가 활약한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4세기 전반기이다.
가계 역시 확실하지는 않지만, 춘추 시대 노환공의 후예가 나뉜 삼환(맹손씨, 숙손씨, 계손씨) 가운데 맹손씨의 후대이었으나, 맹자의 가문이 추나라로 이주했을 무렵에는 삼환은 이미 몰락했다. 어머니 장()씨는 맹자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세 번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로 유명한 현모로서, 어머니에게도 큰 감화를 받으며 학교의 수업을 마친 뒤,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로 가서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인에게서 공자가 편찬한 육경을 배웠다. 자사의 계통은 공자의 경우에는 별로 드러나지 않았던 `천(天)`의 신앙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제자백가 시대에 돌입한 당대에 묵적과 양주의 사상과 경쟁하며 유가 사상을 확립했다. 40세 이후에 인정(仁政)과 왕도정치를 주창하며 천하를 유력했다. 법가나 종횡가가 득세하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으며 은퇴했다. 60세 이후의 삶은 알려진 바가 없다
맹자의 사상
저서로 맹자가 있다. `맹자` 7편은 만년의 저술이라고 하나 의문이며 실제로는 그의 제자들이 편찬한 것으로 봄이 옳을 것이다. 맹자의 사상은 하늘에 대한 숭경의 정념이라고 하겠다. 맹자는, 하늘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낳고 그 피조물(被造物)…
다섯으로 정리한 것으로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고 한다. 맹자는 공자의 덕치주의 사상을 하늘이 만민을 낳고 그 통치자로서 유덕자(有德者)를 천자(天子)로 명한다는 `서경(書經)` 이후의 천명관(天命觀)으로 뒷받침했다. 하늘의 신앙에 의해 정치권력의 정통성에 기초를 주는 사상이다. 그리고 하늘의 의지는 민(民)의 소리와 천지의 제신(諸神)의 승인으로 알 수 있다 하여 민본주의(民本主義)의 요소가 부가되었다.
맹자는 농사의 방해가 되는 노역이나 전쟁을 하지 않고 우선 민생(民生)의 안정을 꾀하며 이어 도덕교육을 행하여 인륜(人倫)의 길을 가르치면 천하의 사람들은 기뻐하여 심복하고 귀일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옛날 성왕(聖王)들의 정치, 즉 `인정(仁政)`이며 `왕도(王道)`라고 했다. 이 주장이 맹자의 `왕도론`이며 그는 또한 `서경`에 강조되고 있는 은주 교체기(交替期)의 역성혁명(易姓革命) 사상을 확인하고 있다. 그의 논법은 민의(民意)를 배반하고 인의(仁義)에 어긋난 은나라 왕 주(紂)는 이미 군주가 아니라 한 평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나라 신하였던 주의 무왕은 필부(匹夫)인 주를 토벌한 것이지 군(君)을 시역(弑逆)한 것은 아니라는 격렬한 것이었다. 이 점에 바로 군신의 의 이상의 것으로서 천명(天命)이 설정되어 있다. 맹자는 정치적 원리로서의 하늘을 설명하지 않았던 공자보다 여기서는 앞서고 있다.맹자는 주나라 제후국 노나라 출신으로 은주 교체기(交替期)에 대한 그의 관점은 주나라 건국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부분이다. 민의(民意)를 배반하고 인의(仁義)에 어긋났다는 것은 주관적인 해석으로, 왕이 부도덕하다고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모든 신하들에게 쿠테타에 명분이 되는 논리로서, 맹자 스스로가 주장한 군신유의(君臣有義)에 위배된다. 맹자는 논리라면 주공단이 명분없이 섭정 할 때 은나라 후예 무경에게 주나라가 망했어야 정의로운 것이며,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실현이다. 역성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