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중일관계
《 목 차 》
Ⅰ. 문제의식 - 갈등의 시작
Ⅱ. 중일 간 역사 전개
1. 냉전시기
(1) 국교정상화 이전 `비정상적 시기`
(2) 국교정상화 시기와 평화우호조약 시기
2. 탈냉전기
Ⅲ. 현재 중일 간의 이슈
1. 역사문제(역사인식, 야스쿠니신사 참배)
2. 영토분쟁(센카쿠열도)
3. 대만문제
4. UN개혁과 일본의 상임이사국 문제
Ⅳ. 중일 관계의 전망
Ⅴ. 중일관계가 한반도에 미치는 함의
Ⅵ. 문제제기
Ⅰ. 문제제기
중국과 일본은 경제적으로 1972년 국교정상화 이래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센카쿠-댜오위댜오 분쟁, 역사문제, 신사참배문제 등으로 냉랭한 관계에 있다. 특히 작년에는 일본이 센카쿠열도의 국유화를 선언한 이후, 중국 내 50개 이상의 도시에서 반일시위가 일어난 바 있다. 이는 중국과 일본이 1972년 국교를 정상화한 이후 중국에서 일어난 최대 반일 시위였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 역시 4일 인도 뉴델리에서 경제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중국은 해군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것은 동중국해와 일본해(동해의 일본식 명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하고 “자신의 영토는 스스로 …
조는 일본에 대한 배상을 완화시키고, 배상청구를 포기시키는 국제적 압력으로 구성된 것이었다.
중국과 소련의 갈등과 함께 냉전으로 양극화된 국제체제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1956년의 소련의 스탈린 비판에 대한 마오쩌둥의 불만으로 중소갈등이 시작되고, 1962년 쿠바 위기 사태2) 후, 중국은 흐루시초프를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중소 간 갈등이 심화되었다. 한편, 쿠바 위기 이후 미국과 소련 양국 간에 화해의 움직임이 시작되어, 미국과 소련은 1963년 부분적 핵실험정지조약을 체결하고, 테탕트로의 발걸음을 시작했다. 1960년대의 냉전은 미소 간에 상대적으로 안정된 한편, 중소 간 그리고 미중 간의 긴장으로 변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중국의 핵개발이 분명히 나타나면서, 중국은 냉전의 ‘전초’에서 ‘중심’의 위치로 이동하고 미국의 전략도 미소냉전에서 미중냉전으로 중심이 움직였다. 미국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이라는 경험을 쌓으면서 사실상 소련보다도 중국이 미국에게 냉전의 주적이라는 관념을 형성했다.
1950년대 냉전체제 하에서의 소련-중국-북한을 잇는 북방 삼각관계와 미국-일본-한국을 잇는 남방 삼각관계는 1960년대 중소갈등을 시작으로 미소간의 데탕트 분위기가 연출되는 가운데 중미간의 갈등으로 변화하였다.
② 중국의 내부적 상황과 대일인식
중국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기 이전부터 소련 일변도를 선언하고 1950년대에도 중소우호관계를 유지해왔다. 미국의 외교정책 노선을 따라온 일본과 적대적 관계에 있었지만 일본을 직접적인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적 분야 즉, 무역에서의 민간외교를 추진했다. 1960년대 중국이 미, 소와 관계가 악화되고 미일협력의 기조가 강했던 시기에도 일본과의 무역은 확대 추세가 기본적으로 유지되었다. 중소분쟁으로 소련과의 경제적 협력이 축소되어 일본과의 실용적 경제 이익차원에서의 상호교류를 증대시키려고 한 것이다. 1965년 베트남 전쟁에 대해 일본과 충돌했을 때도 무역에서는 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