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YAHOO
1. 기업개요
어렸을 적, 인터넷 창을 키면 항상 우리들을 반겨주는 사이트가 있었다, 바로 ‘야후 코리아’였다. 하지만 2012년 이후 한국시장 철수로 더 이상 한국에서는 야후를 볼 수가 없다. 과거 1990년대 세계 최대 포털사이트였던 야후가 이렇게 극심한 부진에 빠진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야후기업의 변천사를 자세히 살펴보자.
1.1 YAHOO! 검색엔진의 절대강자
세계 최초의 검색 엔진
`그림 1` 1995년 야후
1994년 야후의 창업자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는 스탠퍼드대학교 박사과정 중 사람들이 인터넷에 퍼져있는 정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바로 이 소프트웨어가 세계 최초의 검색 엔진 야후의 시초이다.
1995년 4월 인터넷 최초의 포털 기업인 야후(Yahoo!)를 법인회사로 설립한다. 창립 5년 동안 야후는 「디렉터리 서비스 -` 검색 엔진 -` 포탈 사이트 -` 인터넷 미디어 업체」로 진화발전하였다. 매출 또한 1995년 140만 불을 시작으로 1998년에는 2억 불이라는 경이로운 성장세를 기록하며 세계 최대 포털 사이트로 자리매김했다.
DO YOU YAHOO
1996년 “DO YOU YAHOO”라는 문구로 TV, 라디오, 인쇄 매체, 스티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마케팅을 실시한 야후는 대중들에게 확실한 브랜드로 각인되게 되었다. 홍보에 맞춰 E-mail, 뉴스, 날씨, 커뮤니티, 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사업 확장으로 www의 창구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처럼 야후가 1990년대 세계 인터넷에 시작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고객중심의 서비스를 했다는 점이다. 당시 야후 초창기에도 라이코스, 인포시크와 같은 유사 기업들이 있었다. …
1.2 YAHOO! 몰락의 순간
벼랑 끝에 선 야후
`그림 2` 세계 검색시장 점유율
9년 브로드캐스트(Broadcast.com)인수사업 실패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야후는 동영상 서비스 업체인 브로드캐스트를 인수하기 위해 57억 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온라인 미디어 시장에서 예상 밖에 부진으로 몇 년 정도의 운영 후 야후 사이트에서 사라져 버렸다. 당시 재무적으로 너무나 큰 타격이었기 때문에, 이후 야후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과감한 결정에 대해 위축되게 된다.
둘째, 구글 인수 실패이다. 현재 세계의 모든 검색엔진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구글을 2002년 야후가 인수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CEO인 테리 시멜은 50억 달러라는 협상조건 차이로 인수 건을 취소하였다.
셋째, 테리 시멜 전 CEO를 영입한 것이다. 그는 뛰어난 협상가로 야후의 CEO가 되고나서 버라이존, 광고업체인 오버추어를 인수하는 등 야후를 종합 미디어 제공사이트로 만들었다. 그 결과, 부작용으로 야후는 미디어 기업인지 플랫폼 기업인지에 대한 ‘정체성혼란’을 겪게 된다. 오히려 구글이 자신들의 검색엔진시스템을 강화한 것과는 사뭇 대조된다.
넷째, 더블클릭 인수 실패이다. 더블클릭은 당시 세계 1위의 온라인 광고 업체였다. 야후 매출의 약 76%가 온라인 광고매출에서 얻는 것을 비추어 볼 때, 더블 클릭 인수는 야후에 막대한 시너지효과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야후가 협상을 지체하는 사이, 구글이 더블클릭을 인수하게 되었고 그 결과 온라인 검색광고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섯 째, MS(마이크로 소프트)와의 인수협상 실패이다. 다섯 개의 실패사례 중에 가장 유명한 일화로 2008년 MS의 야후 인수실패이다. MS의 CEO 스티브 발머는 주당 31달러와 33달러 두 번의 인수제안을 했지만, 당시 야후 CEO였던 제리 양은 이를 거절하고 구글과 검색광고 제휴를 선택하였다. 하지만 인터넷 광고 독점 우려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게 되면서 주가가 60% 가까이 폭락하였고 매출 상승률 또한 전년 대비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