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Ⅰ 서론
현재 탄산음료 시장의 2위를 점하고 있는 펩시콜라. 이 펩시콜라는 소화불량 치료제로부터 유래되었다. 1890년 미국 약사였던 칼렙 브래드햄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Brad`s Drink라는 이름으로 처음 선보였다. 1989년 그는 자신이 만든 이 음료에 현재의 펩시콜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1902년에 상표권을 획득해 펩시콜라(pepsi-cola company)라는 법인을 설립하여, 본격적인 펩시 시럽 판매를 시작했다. 이후 펩시는 선점효과를 차지한 코카콜라의 아성을 깨지 못하여 수차례 도산하고 주인이 바뀌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 펩시콜라는 1933년 콜라 가격을 코카콜라의 절반 수준으로 내리는 저가 정책을 실시하는 중대 결정을 내린다. 결과적으로 이는 펩시콜라를 확고한 2인자 반열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이는 도산 직전이던 펩시콜라를 여느 제 3자 음료 기업들을 제치게 하는 발판이었을 뿐 1950년 탄산음료 시장에서 여전히 코카콜라에 한참 뒤졌다.1)
그러나 코카콜라 마케팅 임원이었던 알프레드 스틸이 펩시의 새 주인이 되면서 펩시는 하나의 건실한 기업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일반적으로 콜라 판매는 보틀러가 소매점에 유통시킨다. 식당 판매의 경우는 식당이 직거래하게 되는데, 당시 코카콜라는 식당 판매에서 펩시보다 우위에 있었다. 스틸은 이러한 시장 상황을 파악하여 채널 집중화 전략을 취한다. 코카콜라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식당 판매보다 보틀러를 통한 편의점과 슈퍼마켓 판매에 주력하게 되고 이는 펩시가 유통 채널에서 자리를 크게 점하고 판매량을 늘리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된다. 1963년 도널드 켄덜이 최고 경영자가 되면서 펩시는 펩시콜라 사상 가장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게 된다. 도널드 켄덜 이후 펩시는 세 가지 전략으로 코카콜라를 위협하는 굳건한 후발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된다.
첫째로는 저가 전략이다.2) 이러한 전략을 펼친 데에는 강력한 근거가 있었다. …
79년 펩시콜라는 미국 슈퍼마켓 판매에서 처음으로 코카콜라를 앞서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세 가지 전략으로 60~70년대 펩시콜라는 코카콜라를 위협할 만한 탄산음료 시장의 한 축으로 성장하게 된다. 또한 60~70년대 주요 타깃으로 잡은 어린이와 10대 청소년 층이 90년대에 어엿한 성인, 커다란 소비자 세력으로 자리 잡아 펩시의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펩시는 1970~80년대 잠시 우위를 점한 것 빼고는 여전히 코카콜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2위 기업에 머무르고 있었다. 펩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60~70년대부터 실시한 젊은 마케팅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여러 가지 방면으로 코카콜라를 이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코카콜라는 이러한 펩시콜라의 마케팅 전략에 넘어가 큰 실수를 범하고 만다. 그 실수의 결과물이 바로 1985년 출시한 ‘뉴코크’이다. 펩시콜라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소비자들이 단맛에 대한 선호를 인지한 코카콜라는 연구를 통해 펩시콜라의 맛과 흡사한 새로운 콜라를 출시한다. 그러나 막상 출시한 뒤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오히려 ‘옛날의 코카콜라를 돌려 달라’며 항의가 빗발치는 역효과를 낳았다. 이러한 코카콜라의 실수는 펩시콜라에게 있어 기회로 다가온다.
한편, 90년대 초 탄산음료 시장3)을 살펴보면, 탄산음료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나 이에 발맞춰 시장도 크게 성장하고 있는 추세였다. 이 때 당시 미국의 1인당 탄산음료 소비량은 약 52.5 갤런으로, 이러한 소비량은 일반적인 선진국들 수준의 2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이 같은 소비량이 매년 평균 4% 정도씩 늘어나고 있었다. 뉴코크로 인한 코카콜라의 위기와 맞물려 90년대 초 펩시콜라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이후 펩시콜라는 기존 콜라에서 벗어나 색다른 포지셔닝을 통한 새로운 브랜드 출시 등 여러 각도에서 시장 선점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그 노력들 중 하나가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