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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건국절 논쟁
뉴라이트와 관련된 논쟁을 다룰 때 여러 논쟁 중에서도 건국절 논쟁은 아주 ‘뜨거운 감자’이다. 사실 얼핏 생각하기에는, 광복절이나 건국절이나 이름만 다르지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기 십상이다. 하지만 곰곰이 그 속을 들여다보면 광복절과 건국절 논쟁은 그저 공휴일의 이름을 바꿀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아니고, 그 이름에 담겨있는 여러 가지 함의간의 총성없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이 강조된다. 반면 건국절은 1948년 8월 15일이 보다 강조된다. 광복절을 주장하는 측(이하 광복절 측)은 1945년 8월 15일이 우리 민족을 핍박하던 일제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을 중시한다. 반면 건국절을 주장하는 측(이하 건국절 측)은 1948년 8월 15일, 한반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건국되었다는 것을 중시한다. 본격적으로 양쪽의 의견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런 논쟁이 나온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자.
건국절에 관련한 언급은 1990년대 중반에 처음 나오게 된다. 당시 `조선일보`는 연재기사 ‘거대한 생애 이승만’을 65차례에 걸쳐 내보냈다. 연재기사의 마지막 날인 1995년 12월 28일에 정부에서조차 건국기념일을 제대로 논의하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뉴라이트 운동계열의 사람들은 2003년 8월 15일, 북핵저지시민연대자유시민연대민주참여네티즌연대 등이 모여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 국민대회’를 열었고 이때부터 보수계열의 단체들이 8월15일을 건국절로 기리는 행사를 주도하였다. 이런 흐름은 2007년 11…
첫째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광복절 측과 건국절 측의 주장이 다르다. 광복절 측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받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의견인 반면, 건국절 측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따라서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와는 별개로 수립된 것이라고 말한다.
기초위원으로 참여했던 유진오 박사는 자신은 공산주의에는 반대하지만 자본주의체제에서 발생하는 무한경쟁, 약육강식의 폐단을 치유하기 위해 제헌헌법은 단순히 미국에서 직수입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를 헌법의 기본정신으로 삼았다고 말한다.3)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대한민국 제헌헌법이 표방한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의는 중요 산업 국유화, 토지 국유화, 무상 교육, 무상 치료와 같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건국 강령을 골자로 한 것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말한다.4) 이는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근거가 된다. 두 번째 근거는 임시정부의 승인에 관한 것이다. 광복절 측은 임시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1921년 11월 3일 임시정부의 특사 신규식이 쑨원을 광쩌우에서 만나 임시정부를 승인받았고 레닌이 이끌던 소련 정부가 1920년 7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200만 루불의 독립운동 지원 자금을 비밀리에 약속하고 그 가운데 60만 루불을 먼저 제공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한국의 임시정부를 인정했으며 1942년 4월 중국 국민당정부 국방최고위원회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안을 가결했으며 1944년 6월 프랑스와 폴란드 정부가 주중대사관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을 통고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임시정부가 열강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낮추어 평가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남의 나라를 빼앗아 부를 누리는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지 해방운동과 독립운동을 벌이는 국가와 정부를 승인할 리가 없다며 이러한 생각은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나온 말이라며 비판한다.5)
반면 건국절 측에서는 임시정부는 국제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완전한 국가로 볼 수 없고 따라서 임시정부는 정통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본다. 뉴라이트 측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는 ‘국제적인 조건’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동의`와 ‘강제력’이라는 권력의 요소가 충족되어야 그 공동체를 국가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6) 대한민국임시정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