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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파문
9일 방송된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홍익대, 한국외대 등 각 대학 퀸카들이 출연해 연애관, 결혼관 등에 대한 미녀들과의 시각차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남자 키`에 대한 한국 여대생의 발언. 홍익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이도경씨는 키 작은 남자와 사귈 수 있느냐는 MC 남희석의 질문에 `그럴 수 없다. 키는 경쟁력이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송이 끝난 후 `루저` 발언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지자 이씨는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대본에 `루저`라는 단어와 함께 내가 방송에서 말했던 그대로의 이야기가 적혀있었다`라며 `물의를 일으켜 너무 죄송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일부 네티즌들은 이씨를 `루저녀`로 통칭하며 구체적인 신상 및 과거 사생활을 인터넷상에 퍼뜨렸다. 또한 이씨가 가입한 인터넷 카페 목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현재 이씨의 미니홈피는 폐쇄된 상태다.
`키 작은 남자는...loser` 라고 영어까지 자막에 쓴 화면은 인터넷으로 급격히 퍼지며 KBS는 13일 `미수다 제작진이 이번 사건에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밝히며 예능 제작국 선임 이모 PD와 작가진을 포함한 제작진을 교체한다` 고 밝혔다
KBS측의 공식사과와 제작진 교체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언론중재위원회(이하 언중위)에 KBS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조정신청이 폭주하는 등 사회적으로 파문이 확산됐다.
19일 오전 9시 현재까지 언중위에 접수된 조정신청 건수는 총 156건. 17일까지 78건이 접수됐는데 이틀만에 급증해 배로 늘어났다. 손해배상 청구 액수도 천차만별이다. 상징적으로 1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정신적 피해의 대가로 무려 38억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청구한 사람도 나타났다
한 철없는 여대생의 발언이 공…
(1) `180이하는 패배자`는 그 여대생의 생각인가 아니면 TV프로그램의 대본인가
(2) 키가 180cm가 안되는 남자는 패배자인가
(3) `180이하는 패배자`는 개인적인 취향인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인가
(4)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듣는 사람이 불쾌하지 않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가
(5) 대중들의 분노는 합당하게 표현되고 있는가
(6) 누가 그 여대생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듦으로써 소동이 발생한 것일 뿐이다.
만약 `180이하는 패배자`라는 말이 일반적인 현상에 대한 표현이라면 180이하의 남자들을 비하한 것이 된다. 표현상의 실수일 수도 있지만 대중들은 일반화적인 현상을 말한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분노한 것이다.
(4)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듣는 사람이 불쾌하지 않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가
과학적인 여론조사가 뒷받침해 주듯이 우리 사회의 젊은 여성들은 짝짓기의 조건에서 남성의 키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180이하는 패배자`라는 기준을 가진 여자들도 많을 것이다.
만약 그 여대생도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했을까
솔직하게 말해야 했을까 아니면 거짓을 했어야 했을까 아니면 솔직하게 말해서 남들을 불쾌하게 만들어서도 안되고 거짓말을 해서도 안되니 그 부분은 말하지 않았어야 했을까
(5) 대중들의 분노는 합당하게 표현되고 있는가
`180이하는 패배자`라는 말이 방송으로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났다.
그 분노의 표현은 주로 인터넷을 통하여 표출되고 있는데 여기에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
그 여대생의 개인신상정보가 파헤쳐져 떠돌아다니고 있고 사람들은 그 여대생의 인격을 모독하는 표현들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여대생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이는 잘못된 것이다.
(6) 누가 그 여대생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180이하는 패배자`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외모치중의 풍조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영화나 스포츠와 같은 대중문화나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심 때문에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몸은 자연환경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켜내고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영화나 스포츠에서처럼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소동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외모치중의 경박한 풍조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백인형 외모 절대주의에서 벗어나 각 인종의 다양한 특성적 아름다움